한국일보

‘비열한 거리’에 선 회장님들

2007-05-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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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훼어필드 트레이딩 대표)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뉴욕에서 열렸었다. 맨 마지막 날 순서가 한국영화(비열한 거리;영어제목 A Dirty Carnival)이어서 품들여 맨하탄 나들이를 하였다.

2006년도에 제작한 한국사회의 독버섯 같은 조직폭력배들의 세계를 그린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고 피 튀기는 비정한 영화로 상영기간이 무려 2시간20분이 넘는 대작이다.주인공인 귀공자 이미지의 조인성(병두 역)은 과부된 병든 어머니와 남동생과 여동생을 책임진 가장이지만 그의 직업은 건달이고 두목을 하늘처럼 모시고 산다. 때로는 자기의 이익에 어긋나
면 상급자 두목도 인정사정 없이 회칼로 살해하다 결국 자기도 하급자 폭력배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폭력세계의 내막을 고발하고 있다.


자신의 부를 위하여 조직폭력과 손잡은 영화 속의 황 회장은 주인공 건달에게 인생이 성공하려면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면 된다는 그의 생활철학을 화두로 던져주고 폭력배를 자기의 사업에 이용한다.내용 전개도, 화면 구성도 지루하지 않고 영어 자막도 세련된 구어체로 잘 번역되어 옛날에 한국영화에서 보던 촌티 나는 활동사진에서 벗어나 관객들에게 작가의 의도가 비교적 잘 전달된 작품이라고 봐주고 싶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때가 때인 만큼 버지니아 총기사건이 한인으로 인한 참사인지라 폭력과 한인이라는 엉뚱한 이미지를 세인들에게 심어줄까봐 근심이 되기도 한다.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미국영화든 한국영화든 폭력과 욕설이 거침없이 튀어나와 자녀들과 함께 보기가 민망한 때가 많다.이 전 한인회장이 모 한인단체의 전 전회장에게 폭력을 휘둘러 고소하였다는 보도를 접하고 과연 대뉴욕지구 한인 파워를 우리는 실감하고 산다. 밖에서 매 맞고 들어온 자식의 분풀이로 조폭을 동원하여 통쾌한 복수를 하였다 하여 한국에서 한참 매스컴의 조명을 받은 한화그룹의 김회장이나, 지난 일의 앙금 때문에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다 미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한인단체 전 회장의 폭력혐의 구설수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는 심심치 않은 안주거리를 챙겨주고 있다.

‘비열한 거리’라는 한국 조폭 영화를 보고 나니 앞서 말한 회장들의 전투가 그 영화와 오버랩 된다. 요즘은 모방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는데 이들도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영화 속의 주인공 흉내를 내려다 사태가 이렇게 번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대기업의 회장이나 사회단체의 회장 자리나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직책이기에 처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망신살 뻗치기 십상이다. 시대를 뒤로 거슬러 전두환 정권 시절이라면 모두 삼청교육대 입소감이다.

한국 영화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여 세계 많은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이 마당에 이제는 폭력이나 전쟁영화만 만들어 세상 사람들의 인성을 황폐하게 하지 말고 순정 영화나 순애보를 그린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를 만들어 말세처럼 인간들의 정서가 거칠어지는 이 사바세계에 안정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회장남들의 상투 잡기 싸움이나 조폭을 수족처럼 부리는 회장님들의
마음도 한결 순화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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