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사랑하고 서로 두우며 최선을 다해

2007-05-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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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어떤 친구가 말했다. “살아있으면서 육신을 가진 채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을까?” 어떻게 살아있으면서 그것도 육신을 가진 채 영원히 살아갈 수가 있을까. 중국의 진시황제가 자신도 남들처럼 죽어야하는 것을 안 뒤에 불로초를 구하려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구해오라 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그도 죽고 말았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아무리 죽지 않으려 발버둥을 쳐봐도 늙으면 죽게 돼 있다. 결국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게 인생인데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기고만장하여 살아간다. 어리석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세상에선 인간만큼 귀한 존재도 없다. 수많은 별들, 아마 수천억 개는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아직도 밝히지 못한 이 우주의 광범위함이란 인간이란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도 다 밝힐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한계의 존재요 과학도 한계가 있기에 그렇다. 그토록 수많은 별들 중에, 그것도 지구라고 하는 행성 하나에 생명들이 존재한다. 무수한 생명들 가운데 인간이란 존재는 아주 특별하다. 아주 귀하다. 식물, 동물, 광물 등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인간의 지배하에 있고 인간의 손이 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이라고 하는 생명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지구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 같기에 인간은 아주 특별하다. 또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어머니의 난자에 아버지의 정자가 만나 착상이 된 후 나라고 하는 생명이 탄생됐는데 그 이전엔 아무것도 없었을까.

종교에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들 하는데. 죽어도 죽지 않고 떠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떠돌던 그 무엇이 착상할 때에 들어가 다시 환생한다고 하는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또 그 친구는 말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난다는데 그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단 말인가. 그것도 육신을 갖고 살아난다는데 참으로 과학적으로는 증명도 설명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 또 살아간다면 그 때는 어디에서 살아간다는 말인가. 하늘인가 땅인가?”살아 있다는 존재 자체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가치를 지닌다. 태어나기 전에 무엇이 있었건,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건, 그것은 전의 일이요 후의 일이다.

인간이란 생명체를 지니고 현재 살아가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음을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야말로 존재를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이다.산다는 것 자체는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려고 하는 데 있는 것 아닌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의식
주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 편히 사는 게 행복일까. 그렇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이란, 인간이란, 아주 특별한 존재여서 그 행복이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바라는 욕심이 꿈틀대어 죽지 않고 영원히 가기를 바란다. 자손만대로 행복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여기에 인간의 불행이 있다. 아무리 육신이 편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떨림이 종교를 낳게 한 것임엔 틀림없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고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탄생과 살아감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는 곧 종교를 낳고 종교는 영생을 추구한다.

오늘 하루가 중요하다. 오늘은 내일을 잉태한다.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가치 있게, 귀하게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고 도와가며 사는 길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부자라도 남을 위하고 도와주는데 쓸 줄도 모르는 수전노 같은 사람이라면 그의 생명이 너무 불쌍할 뿐이다. 만약 그의 생명을 오늘 밤, 하늘이 데려가 버린다면 재산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퀸즈 블러버드 우드사이드를 지날 때 마다 만나는 가톨릭 공동묘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비석도 많다. 그들이 누워있는 무덤 위를 새들이 평화로이 한가롭게 날아다닌다. 비석 앞에 갖다 놓은 어느 님들의 꽃들. 봄볕에 꽃들이 가신님들 앞에서 웃음 짓는다. 땅의 인간
으로 태어나 하늘의 인간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들. 땅의 후손들. 살아 있으면서 영원히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있다. 살아있으면서 영원히 사는 길은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길. 하루와 영원은 떨어진 둘이 아니라 하나의 선상에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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