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화 솜과 어머니

2007-05-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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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어린 시절에 비친 나의 어머니는 링거 병에서 환자의 혈관으로 수액이 흘러 떨어지는 수술실에서 개업의사였던 아버지가 수술을 집도하는 동안 수술도구를 순서대로 차례로 옮겨 집어주는 보조 역할이었다.무거운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수술실의 무성영화 같은 풍경 속의 어머니보다는 목화 솜에 얽힌 추억이 더욱 가슴이 시리다.어머니는 폭도 넓고 이랑도 긴 밭에 목화 씨를 뿌리고 목화 재배에 열정을 쏟았다.

목화는 두 번 꽃을 피운다. 보통 7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한 연분홍 목화꽃은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10월이 되면 다래라고도 부르는 이 열매는 단단하게 익어 마침내 알밤 터지듯이 벌어져 눈송이같은 목화가 피어나는 것이다.물론 이 목화는 꽃이 아니고 열매의 씨앗이다.
그러나 열매가 벌어져서 흰 무명이 꽃처럼 피어나므로 목화(木花)라고 부른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목화 솜이 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목화밭은 자연의 경이로움의 극치이다.


동물의 가죽과 털로 만든 모피나 질감이 떨어지는 합성섬유와는 달리 목화에서 무명실을 뽑아 짠 무명 천은 튼튼하고 세포가 살아서 숨쉬듯이 통풍도 잘 된다. 또한 목화는 인류의 필수품인 옷의 원료를 무상의 선물로 베푼다.어머니가 목화 재배를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 입학 무렵이었다. 딸의 혼수감 이불을 장만하려는 어머니의 집념과 목표였을 것이다.어머니는 목화 솜을 한 송이 두 송이 따면서 딸의 장래에 소망을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기대와 희망 속에 갇혀있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목화 채취가 끝나고 목화 솜으로 이불이 완성되는 과정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대학 졸업도 하기 전 결혼을 급히 서둘렀고 아이를 낳고 학업과 결혼을 병행하는 전쟁같은 힘겨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나는 더 높이, 더 멀리 창공을 차고 비상하는 새가 되어 이국땅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태평양이라는 망망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 모녀가 헤어진 시간들은 너무나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풀벌레가 우는 어느 가을밤에 어머니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내일 편지를 부칠 터이니 며칠이면 받아볼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어 어머니의 편지는 영영 받을 수 없었다.

못다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목화 솜같은 사연일 것이다.나는 어머니를 통하여 한 생애의 끝자락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은 건강하지만 언젠가 어두운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주위의 집착해 있던 모든 물건들을 아낌없이 하나씩 버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소멸한다는 우주의 섭리를 비로소 깨달았다. 동시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도 알게 되었다. 또한 죽음은 탄생과 같이 삶의 일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혈연의 고리도 죽음이라는 냉혹한 칼로 끊어버릴 수 있음을 알았다.어머니가 직접 쓰신 12폭 짜리 서예 병풍, 어머니의 수려한 붓글씨의 서예품들을 내게 남기고 떠나가시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게 정말 주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의 숨결같은 따뜻하고 포근한 목화 솜 이불이었다.목화 솜은 어머니의 체온처럼 따뜻하고 눈이 부시게 흰 숭고한 모성애의 상징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목화 솜 이불이 완성될 때까지 몇 달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인들 기다리지 못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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