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

2007-05-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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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60년 초에 미국에서 닥터 수(Dr. Seuss)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한 눈에 분간할 수 있다. 우선 주제가 개성적이다. 그는 고정관념을 박차고 독특한 세계를 창조한다. 글의 표현이 단순하고 간결하며 거기에 운(rhythm)이 있어서 소리내어 읽을 때 즐거
움을 준다. 그래서 두서너 살 어린이들까지도 아무런 부담 없이 그의 책들을 사랑하면서 공상과 환상의 나라를 여행하게 된다. 그의 책들은 특정한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진 성숙도에 따라서 글의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 글을 읽는 동안 인생 역정에 필요한 교훈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더욱 좋다.

그의 특징은 글과 그림의 듀엣으로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글이 개성적인 것만큼 그림 표현도 독특하다. 선이 간결하며 색채가 밝고 맑은 그림들이 시공(時空)을 넘나든다. 그는 주로 의인화(擬人畵)를 그리는데 그의 손길이 닿으면 모든 것에 생명이 싹터서 자
유분방한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닥터 수를 비롯하여 많은 아동문학작가의 유산을 잔뜩 가지고 있는 미국은 부자이다.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은 책을 친구로 사귀며 자란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 출입을 하면서 항상 책 가까이에서 호흡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아동문학작품과는 먼 거리에 있다. 그 이유는 책이 있어도 읽는 힘이 약해서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마도 한국에는 재
미있고 아름다운 동화책들이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어를 더 열심히 가르쳐야 하고, 아동문학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도록 연구해야 하겠다.

소파(小波) 방정환 님은 한국의 큰 재산이다. 그는 ‘어린이’라는 호칭으로 ‘어른’과 같은 대접을 받도록 애들의 지위를 격상하였다. 1923년 3월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 그는 한국의 아동문학 운동의 선구자이다. 동화집으로 ‘사랑의 선물’ ‘까치옷’ 등의 번역 동화와 ‘만
년 샤쓰’ ‘동생을 찾으러’ 등의 창작 동화가 있다. 우리들이 현재 지키고 있는 5월의 ‘어린이 날’을 만든 것도 소파의 업적인 것이다.
또한 동요짓기로 일생을 바친 윤석중 님의 공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내 어린이들이 부르는 많은 노래말 중에는 윤석중 동요가 적지않게 섞여 있다. ‘어린이 날’ ‘새나라의 어린이’ ‘졸업식 노래’ 등이 그 예이다. 그의 저서 또한 많으며 ‘어깨동무’ ‘초생달’ ‘노래 동산’ ‘여든 살 어린이’ 등이 있다. 특히 그는 해외 어린이들을 위하여 매년 글짓기 대회를 열었고 생전에 널리 글로벌 동요 세계를 개척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지역의 코리안 아메리칸 어린이들에게 한국적인 동화를 읽히고 싶은 이유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한국문화·한국의 마음을 알리고 싶은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동화’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전래 동화와 창작 동화가 있다. 전래 동화는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 말한다. 창작 동화는 독창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즉 예술 작품을 말한다.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는 표현이 단순한 전래 동화와 한국내와 현지에서 생산된 창작 동화를 읽히고 싶다.그러나 현지의 사정은 다르다. 각 지역에 문인들의 모임이 형성된 지도 오래 되었고, 문학 작품 모음도 활발하게 출판되지만 거기에 포함된 아동 문학 작품은 기운이 없다. 응모작이 적은 이유는 그들이 받는 대우에도 달렸다. 한국내에서 조차도 상금부터 격차가 있다. 일반인들의 생각도 성인 문학과 아동 문학을 차별 대우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분량도 적기 때문에 그 정도의 대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만끽해야 산소가 충만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의 성장 과정에 영양을 듬뿍 주고 싶다. 그래서 제안한다. 한국말로 지은 동화책·동요책이 이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과정으로 동화·동요 쓰기 동호인들의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럿이 같이 돌아가면서 각자가 선택한 동화·동요를 읽는 작업부터 시작하여서 글을 쓰는 데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시작된다면 글 쓰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이 지역에서도 하나 둘씩 어린이들에게 읽힐만한 동화·동요가 생산되지 않겠는가. 이 성과는 맞춤형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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