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2007-05-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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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아이를 기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내가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TV나 영상매체 보는 것은 통제하고 되도록 종이책을 가까이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아직 글을 자유롭게 읽지 못하는 나이부터 그림이나 만화라도 일단 종이 인쇄물과 친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그 아이에게 장차 ‘독서의 버릇’을 들이기 위함이다.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습관은 여섯 살 이전에 거의 결정된다는 사실과 독서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또 독서는 습관이지 계몽이나 교육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중요성은 알고 있으면서도 습관이 붙지 않으면 읽어지지 않는 게 책이다.책은 영혼의 비타민이다. 정보의 원천이며 지식의 산실이다. 품성을 바르게 배양하고 직업적 전문 역량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보고이기도 하다. 인생관, 사생관, 생활관, 종교관, 국가관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근본적 바탕을 제공해 주는 길잡이, 정보화시대, 영상매체시대, 인터넷 전성시대에 살면서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핀잔을 주어도 이러한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한 순간 비쳤다 사라지는 영상물에서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고 꿈을 가꾸며 낭만에 젖기도 한다. 시공을 초월해 ‘어린왕자’가 되기도 하고 ‘동물농장’에서 인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도 있다. 생각하며 읽게되는 책은 뇌세포의 활동을 촉진하고 도전의 정신과 창의력을 길러준다.세상을 앞서가는 나라 사람들은 예외없이 책을 많이 읽는다.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
들은 모두 책을 가까이 했다. 나폴레옹은 전쟁터까지 많은 책을 싣고 다니는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거니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들 히데타다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시즈오카로 옮긴 후 자신의 장서로 일본 최대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쿄의 대형 서점과 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간다의 고서점가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진귀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궤를 같이하여 일본인의 문인에 대한 존경은 대단하다. 유명한 작고 문인들의 생가는 어김없이 복원되고, 생전에 쓰던 육필 원고이며 펜, 안경 등 유품은 정중하게 보관
한다. 청계천 고서점가가 자취를 감추고 작가들이 푸대접 받는 우리네 사정과는 너무 대조적이다.그런 조상의 얼을 받아서일까, 일본인은 책을 많이 읽는다. 독서인구가 세계 2위다.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어찌하여 책을 많이 읽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와 가정에서 어른들의 책 읽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다. 국민 전체의 월평균 독서량 0.8권, 이것이 독서량 세계 166위의 우리 독서 수준이다. 요
즈음 한류 열품이 아무리 드세게 불어도 문화배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독서 인구가 곧 국력임을 명심할 일이다. 노래방도 좋고 찜질방의 매력도 외면할 수 없고 불륜
드라마에 푹 빠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미개국의 독서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퇴근하면 먹자골목이 분주해지고, 주말이면 고속도로가 꽉 메이는 우리네 사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봄이 어떤가. 책과 함께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은 선진국민이 되는 지름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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