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비즈니스의 ‘부익부 빈익빈’현상

2007-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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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 요소는 의식주이다. 우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먹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다음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옷을 입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기거하는 집이 있어야 한다. 이런 순서로 보면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주의 궁핍을 면치 못했다. 한국의 경우 6.25 직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 속에 살았다. 먹을 것이 없는 보릿고개에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고 미국이 구호물자로 보낸 옷을 얻어 입었고 판자촌에서 산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지금도 세계의 낙후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은 비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인류역사상 최고 수준의 풍요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런 경제선진국에서도 부유층과 빈곤층이 있는데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해 부유층은 돈이 넘쳐나게 되고 빈곤층은 생활에 쪼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계층간 소비상태도 날이 갈수록 양극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부유층의 생활에서 식생활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는 웰빙 바람이 일고 있다. 식품은 유기농식품을 선호하고 건강을 위해서 고가의 영양제도 사 먹는다. 의생활도 또한 단순히 추위를 막고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멋을 내고 몸을 꾸미는 용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질감과 색상이 뛰어난 고급 소재로 아름답게 디자인하여 옷을 만드는 패션산업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집도 점점 더 멋있고 큰 집을 선호하는 추세이며 비싼 동네의 고급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최근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제품에까지 디자인을 개발하고 패션을 추구하는 좥핸드백 효과좦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핸드백은 여성들이 소지품을 담아서 가지고 다니는 일상용품인데 이것이 단순한 소지품 용기가 아니라 패션화하여 장식품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모든 제품에 확산되었다는 것이다.실제로 시중에서 20달러만 주어도 살 수 있는 핸드백이 루이뷔통 브랜드가 붙으면 몇 백달러 이상이 되고 1만달러, 2만달러가 넘는 명품 브랜드도 있으니 이제는 실용성이 문제가 아니다. 또 손목시계의 경우 요즘에는 10달러짜리 제품도 아주 시간이 정확하고 몇 년은 고장 없이 거뜬히 찰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아졌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런 시계를 차지 않고 몇 천달러짜리나 몇 만달러짜리 시계를 찬다. 이처럼 실용성을 넘어 고급 브랜드를 찾는 현상이 모든 소비분야의 추세인 것이다.

값비싼 고급제품이나 고급주택 등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부가 그만큼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30~40년 전 이민 초창기에는 100 내지 200달러 주급을 받는 한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교육을 잘 받은 한인 2세들은 연봉 10만달러 이상 수십만 달러씩 받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에는 백만장자를 부자라고 했는데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소득의 증가로 집 한 채만 가지고 있는 서민도 백만장자가 되었다. 또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인해 돈이 부자들의 수중으로 몰리는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 유지에 급급한데 반해 부자들은 돈을 물쓰듯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같은 현상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볼 때 부자들의 구매력은 크게 늘어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의 구매력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난한 서민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보다는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비즈니스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 한인들은 이민 초기부터 자본의 영세성, 경험과 전문지식의 부족 때문에 변두리 서민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 업종을 개발하여 종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규모나 사회 경험으로 볼 때 한 단계 더 높은 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한인 업자들은 해가 갈수록 장사가 안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당연한 말이다. 서민층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부유층의 구매력이 늘고 있는 추세에서 서민층 상대의 비즈니스는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인 업종을 전문화, 대형화 하는데 더하여 고급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부유층을 고객으로 하는 새로운 업종의 개발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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