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헬리콥터와 치맛바람, 그리고 목욕탕집 남자들...

2007-05-11 (금)
크게 작게
정지원(취재1부 부장대우)

술을 마시다가 옆 좌석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한 한국 재벌가의 아들이 돈 많은 아버지의 ‘빽’을 빌려 보복폭행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사건이 연일 헤드라인에 오르고 있다.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을 보며 왜 요즘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라는 말이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는지 이해가 간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의 개인 생활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부모들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항상 맴돈다는 뜻이다. 예전의 ‘치맛바람’으로 불리던 부모의 열성이 2000년대에 들어 ‘헬리콥터’로 변형된 것이다. 하지만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바람이 치마의 바람보다 훨씬 더 거세듯, 요즘 ‘헬리콥터 부모’들은 20여년전의 ‘치맛바람 부모’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헬리콥터’는 사회적, 또는 전문적 지식이 ‘치맛바람’ 보다 훨씬 더 높다. 대부분의 ‘치맛바람’은 열성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뜨거웠지만 변하는 세월에 대한 적응 능력이 요즘 세대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에 비해 ‘헬리콥터’는 ‘치맛바람’의 열
성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를 자녀들과 함께 간파하는 일종의 ‘최첨단 부모’들이다. 기계도 세월이 지나면 더욱 더 성능이 좋아지듯이 사람 또한 마찬가지인가보다.

‘헬리콥터’와 ‘치맛바람’의 두 번째 차이는 가정과 인성교육의 결여이다. ‘치맛바람’ 부모들 밑에서 자란 요즘 한인 30~40대들은 유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집으로 찾아오신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꾸지람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세상에서 가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요즘 10~20대를 보면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보다는 ‘머리’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요즘 주말마다 한국어 텔레비전 방송국을 통해 10여 년 전 방영됐던 ‘목욕탕집 남자들’이라는 연속극의 재방송을 애청하고 있다. 3대에 걸친 대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살면서 오순도순 일어나는 얘기를 다루는 연속극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할지라도 가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김수현 작가의 메시지가 마치 구수하고 매콤한 찹쌀고추장처럼 기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어릴 적 한국에서 약국이나 병원에 가면 돈이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내용의 글귀를 많이 봤다. 하지만 건강을 지켜야 되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달력을 보니 올해도 벌써 5월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미국에서는 마더스데이가 선명하게 새겨진 그 ‘가정의 달’ 5월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