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긍심 있는 뉴욕한인회 되었으면

2007-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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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준(전 언론인)

K씨는 30년 전 고국에서 체육기자를 지낸 적이 있다. 당시 한국 체육계는 대한체육회가 한국올림픽위원회로 통합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이어서인지 올림픽 금메달 한개가 국가적 지상목표처럼 여겨지던 한국 체육사적 초창기 시절이었다.

규정 해석조차 분분하여 각종 경기가 열릴 때면 곧잘 판정 시비가 일어나거나 종국에는 싸움판으로 결말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특히 군부대 소속팀이 참가한 경기는 해당 팀이 패배할 경우 무언가를 트집잡아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자주 있어 경기 관계자들을 긴장케 하기도 했다.이들이 분란을 일으키는 내부 사연은 단순했다. 지고 귀대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합 뿐이고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어 자신들의 패배가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군가의 잘못 때문인 것으로 핑계를 대어야만 기합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가 되면 우승 트로피를 누가 들고 뛰느냐를 지켜봐야 하는 우스꽝스런 광경이 벌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이러하던 한국 체육계가 어느덧 올림픽 주최국이 되는가 했더니 근년에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동시에 체육 강국이 되어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겨루는 꿈같은 시대를 맞고 있다.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뉴욕에서만도 20년을 살고 있는 K씨는 한인사회의 성장과 모국의 상황을 비교해 본다. 그간 1.5세와 2세들의 비약적인 사회 진출, 이민 1세들의 경제력 향상, 사회봉사활동, 정치력 신장 노력 등 제반분야에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과 비교하여 유독 전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뉴욕한인회 만큼은 발전은 커녕 오히려 퇴보해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뉴욕한인회가 전체 한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정통성과 대표성에 걸맞는 역할과 운영을 제대로 수행치 못했다는 질타에 앞서서 한인회를 이루는 인적 구성원들의 자질과 태도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궁극적으로 뉴욕 거주 한인 전체의 무관심과 방심에 기인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뉴욕한인회의 역사를 보면 초기 한인회는 대략 독립유공 선현들과 학계 진출 유학생 출신 가족들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70년대 이민문호 개방 이후 80년대를 지나가면서 서서히 비즈니스맨 그룹으로 구성원들의 면모가 바뀌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90년대 경제불황을 거치면서 브로드웨이 한인 경제력이 쇠퇴하고 이들로부터의 한인회 지지기반이 흐트러지면서 뉴욕한인회는 회관 하나만 덩그러니 걸머진 그야말로 ‘무주공산(주인 없는 빈 산)’ 양상으로 움츠러 들었다.이 기간 중 한인회장 가운데는 거창한 공약, 젊음, 입지전적인 성공사례 등을 등에 업고 인기몰이에 성공하여 한인회에 입성했으나 막상 당선 후에는 별반 하는 일도 없이 한인회관 수익금으로 비용 쓰고, 근사한 직함 덕에 동포 모임에 초청되어 인삿말이나 하고 다니다가 임기를 마치는 경우를 곧잘 보아 왔다.

금년도 한인회장 선거 이후로는 더더욱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근소한 표 차로 재선에 실패했다 하여 퇴임식을 마치자마자 당선자 측의 지지자를 폭행혐의에 연루되고 그 이유도 “오래 전부터 벼르다가 이제는 회장직을 떠났으므로” 보복하려 했다고 하니 이런 인물을 한인들의 대표로 내세워 신문 방송이 이름을 내어주었다는 점부터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할 따름이다. 이런 일은 시정잡배나 건달들 사이에서나 있을까 해외 한인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자긍심 높다고 평가되는 뉴욕 한인사회에서 일어날 일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뉴욕한인회도 세월을 거스르는 한인회가 아니라 도덕과 규율을 지키고 전체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인재를 결집하고 후세들에게 훌륭한 유산을 넘겨줄 수 있는 조직으로 발전되어 나가기를 K씨는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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