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산과 여성

2007-05-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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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석(미주흥사단 뉴욕지부 단우)

도산이 어떻게 여성을 배려하였는지 근 일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도 공감할 수 있기에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첫번째 일화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어떤 청년이 동지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여자는 분개하여서 그 편지를 가지고 도산에게 와서 편지한 남자를 탄핵하였다.

도산은 무엇이 그리 분한가 하고 물었다. 독립운동 중에 이러한 연애편지는 자기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산은 그 여성에게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미혼한 남자가 미혼한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대는 그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할지언정 분개할 이유는 없다. 하물며 그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이 알 것을 꺼리며 한 비밀의 편지를 제삼자에게 보이는 것은 실례다. 만일 그대가 그에게 시집가기를 원치 아니하거든 사랑해 주시는 뜻은 고마우나 뜻에 응할 수 없습니다 하고 유감하게 여기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 옳고 이후에 어디서 그를 만나더라도 친절하게 환영하고 존경하는 뜻을 표하는 것이 옳으니라” 이렇게 충고하고 도산은 그 남자의 편지를 읽기를 거절하였다.


도산은 애정을 존중하였고 연애도 존중하였다.두번째 일화는, 도산은 애정이 농후한 사람이었다. 여성 중에도 그를 사모한 이가 적지 아니하
였다. 스승올 큰 어른으로 사모하던 것이 열렬한 연애로 화하였던 여성도 있었다. 그가 남경에 있을 때에 어떤 여자가 밤에 그의 침실에 들어간 일도 있었다. 그 때에 도산은 천연한 음성으로 ‘아무개’ 하고 그 여자 이름을 옆방에까지 들릴만한 큰소리로 불러서 “무엇을 찾소? 책상 위에 초와 성냥이 있으니 불을 켜고 보오” 하고 천연하게 말하였다.

이 말, 이 음성에 그 여자는 열정에서 깨어나 도산의 말에 따라 초에 불을 켜고 잠깐 섰다가 나왔다고, 그 여자도 말하고 옆방에서 자던 동지도 말하였다. “그 음성을 들으니 아버지 같은 마음이 생겨서 부끄럽고 죄송하였다”고 여자가 술회하였다. 이와같이 도산은 남의 감정을 존중하였다.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아니하도록 늘 조심하였다.

“그 정열을 조국에 바쳐라”하고 얼마 후에 도산은 그 여자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그 여자는 “나는 조국을 애인으로 하고 조국을 남편으로 삼겠습니다” 하고 도산의 앞에서 맹세하고 곧 남경을 떠나 구라파로 유학을 갔다.도산의 생애를 통해 마음속에서 이성에 대한 열정이 일어난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행위로 나타난 일은 없다.그의 기독교적 사고방식에서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청교도적 요소가 다분히 있으며 동양적으로도 이성에 대하여 혈족관으로 나타나 있다. 즉 늙은 여성은 어머니로, 젊은여성은 누이로, 어린 여성은 딸로 보는 것이다.또한 도산의 이러한 이성관은 다분히 부인에 대한 의리에서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류 동포애의 발로인 그의 윤리이며 자기 인격의 권위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도산은 이성과의 교제를 짐짓 피하지도 아니하였다. 오면 받고 만나면 친절하고 유쾌하게 접대하였으며 여성에 대한 특별한 경의와 겸양을 보였다.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만일 그 얼굴이 보고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바라보라. 곁눈으로 엿보지 말라. 그리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라” 하는 그의 말에서 그는 이러한 원칙 하에 실천하였으며 도산의 명철한 양심은 마음의 밀실에서라도 아내 아닌 이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도산은 다만 우리에게 알려진 바 독립운동가, 사상가, 교육자, 혁명가로서의 그의 진가를 평가하고 있으나 그의 겸양된 자세, 검소함, 예의바름, 양심에 거리낌 없는 행동 등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으 며 동포사회에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목회자의 불성실한 모습에 하나의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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