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2007-05-05 (토)
크게 작게
김민숙(로드아일랜드 주립대 교육학과 교수)

인구 3억의 다인종 복합사회인 미국의 특징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개인주의가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한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온 청교도들은 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최우선에 두었고 국가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다. 따라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가 정부 형태였고 각 개인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제군주국가나 독재국가에서 볼 수 있는 피라밋 형태의 통치체제가 아닌 이상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기에는 초창기의 미국은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광활한 중서부에서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었고, 내 집에 침입한 사람에게 발포할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졌다. 자신의 보호를 위한 총기 소유는 수정헌법을 통해 명문화 되었고 지금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를 찬성하고 있다.미국의 개인주의 전통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경제활동에서도 국가의 관여보다는 자유경쟁에 의한 발전을 도모한다. 공공의료보험 대신에 다양한 형태의 민간 의료보험이 존재하며, 사회적 안전망은 유럽 국가들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공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개인주의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며 개인의 권리가 강조되다 보니 부작용도 나타난다. 예로 정신질환이 있는 대학생의 진료기록도 해당 학생이 승락하기 전에는 부모가 알 방법이 없다. 대학생 자녀의 성적을 확인하려면 자녀의 허락을 맡아야 하며 성적표가 학기말에 집으로 우송되지 않는다.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개인주의가 부정적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특히 동양에서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종종 사용된다. 가족이나 직장에 대한 의무감 조차 소홀히 하며 자신만을 챙기는 것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진정한 개인주의는 각자의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며 고립을 조장하지 않는다. 남들이 나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나도 남들과 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주의가 나의 권리 만큼 남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라면, 이기주의는 나의 권리만이 판치는 사회이다.

한국계 학생에 의한 버지니아 공대의 대학살에서 이 두 가지가 두드러져 보였다. 사건 후 미국의 일 처리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면 한국은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 신문에 실린 만평 때문에 청와대까지 나서 만평가의 경솔한 행동을 탓했고 만평 연재는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웹사이트에 떠있는 영어로 번역까지 된 만평을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다시 올리며 만평을 비난하는 기사가 여러 신문에 실렸다. 진정으로 한국과 재미동포들을 걱정했다면 간단한 기사로 끝낼 일이었지만 실수한 신문사를 깎아내리는 일에 다급했던 이기적인 언론들은 그것을 모른체 했다.

심지어 살인범의 할머니까지 인터뷰 한 것은 인간의 권리 존중에 대한 조그마한 상식조차 없는 몰상식한 것이었다.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명
목으로 슬픔에 젖어있는 노인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그들은 언론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가득찬 집단에 불과했다. 한국정부나 미주한인단체 역시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튀는 불똥을 피하기 위해 온갖 난리를 떨다가 미국이 사건을 개인적인 불행으로 이해하는 것 같으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국가 단위의 이기주의는 쇼비니즘(맹목적 배타적 애국주의)이 된다. 타인종과 화합하지 못하고 우리만 아는 민족이 될까 우려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주의가 만연될까 두렵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