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의 봄

2007-05-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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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칼럼니스트/뉴욕교협)

뉴욕의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봄이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더라.
뉴욕의 봄은 최남단 스태튼 아일랜드 팍스폰드 팍에서부터 온다. 뉴욕항에 기항하기 위해서 먼 나라에 와서 수평선에 보이는 커다란 무역선들이 봄을 싣고 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롱아일랜드 동쪽 몬탁 등대에서부터 온다더라. 등대지기가 매일 일과표에
표시하는 해 뜨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면 봄이 기지개를 편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JFK 공항 옆에 있는 게이트웨이 자연공원에서부터 온다는 설도 있다. 봄기운이 비행기 날개에 묻어서 오기 때문이란다.

“뉴욕은 항구다. 어디 갔나? 아가씨야, 갈매기 슬피 우는데...”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문득 이난영의 트롯 가락이 들려오는 듯하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비둘기 보다 갈매기가 많은 뉴욕은 항만도시다.
미국 총 수출량의 절반이 뉴욕항에서 나가고, 수입량의 3분의 1이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항구이다. 한 세기 전에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으로 미국은 부자가 되었는데 그 중심에 항만도시 뉴욕이 있었다. 오늘날은 월스트릿이 세계 경제의, 유엔본부
가 국제정치의 중심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문화도 그 중심축이 뉴욕으로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을 더욱 화사하게 하는 여성들의 패션 유행도 뉴욕이 리드한다.


뉴욕은 바다와 마천루 빌딩과 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군” 서울에서 온 영화감독이 뉴욕에 처음 와서 한 말이다. 수많은 인종이 사는 뉴욕의 한나절은 정말 한 편의 영화요, 하루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바쁜 일상 속에 살면서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는 전세계 180개 나라 200개 민족이 살고 있는 극장이다. 그렇다고 혼잡할 것도 없다. 자기 나름대로 자기 스타일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지리산 속에
수백 종의 동물들이 자기 길로 다니며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다.

뉴욕 골목마다 각 나라의 먹거리로 가득 차 있다. 여하튼 밥은 먹고 일해야 되니까. 이탈리아노, 그릭, 터키쉬 등 지중해 연안 요리들, 주이시, 시리안, 이집트, 중근동 요리, 케밥으로 유명한 인도도 남부지방과 북부 푼잡 요리가 다르다.동포들이 많이 사는 플러싱 프린스 스트릿만 해도 한 블럭에 베트남, 대만, 타이, 광동, 말레이 식당이 연이어 있다. 그래서 나 혼자서 그 지역을 ‘인도네시아 힐’로 명명했다. 싱싱한 푸성
귀들과 햇과일이 다양한 식탁을 장식하는 뉴욕의 봄은 싱그럽고, 전세계의 맛있는 요리들을 부자가 아니라도 즐길 수 있다. 뉴욕은 그래서 아름답다.

뉴욕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인종차별은 커녕 한국처럼 지역감정이 없어서 좋다. 한국에 가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지역감정의 심각성이다. 오히려 뉴욕 플러싱에 사는 것이 한국 어느 지방도시에 사는 것보다 솔직히 마음이 더 편하다. 유색인종이든 백인이든 빠르고 늦을 뿐이지 모국을 떠나온 것은 같기 때문인지 오히려 인종이나 지역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미국에 살면서 인종적 한계를 느낀다고 불만을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실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물론 다수의 선주민들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소수인종의 차별이라든가, 성별, 학력, 나이 등의 차별을 철저히 법으로 막고 있는 것이 미국이다.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한국만큼 학벌, 출신학교, 출신지역을 따지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경험한 그로서는 뉴욕에서 여러 해를 살면서 그런 문제로 스트레스만 안 받아도 살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좁은 나라에서 고질적인 선입관과 지역감정을
막기 위해서 그러한 차별 금지법안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민의 땅에서 새 봄을 맞으며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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