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퀸즈식물원 후원회를 죽였나?

2007-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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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1973년 한여름에 미국땅을 처음 밟은 이후로 여태까지 내 삶의 자취는 프로스펙트 팍과 브루클린 식물원 주변을 맴돌고 있다.시차 때문에 한달 동안을 잠만 잤던 이민 초기부터 하루의 시작이나 마감을 프로스펙트 팍에서 보냈다. 공원 길 건너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자랄 때 고향 진주의 금산을 오르내리던 버릇 그대로였다.
줄넘기를 하고 곤봉을 하다가 그 넓은 공원을 산책하며 도심의 한 가운데 이런 공원 시설을 갖고 있는 미국이 부러웠다.

프로스펙트 팍(Prospect Park)은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1867년에 585에이커 부지에 설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센트럴 팍(Central Park)의 설계자가 1859년에 만든지 8년만이다. 국가 통합을 끝내 이뤄낸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을 생각하면 60만의 사상자를 낸
전쟁 직전이나 직후도 시민들의 여가 선용과 정신건강을 위해 대자연을 도심에 심어놓는 미국의 위대성을 공원문화에서 보고 있었다.


프로스펙트 팍에서 길 하나 건너편 브루클린 식물원(Brooklyn Botanical Garden)이 있다. 52에이커의 부지에 1910년 일반에게 공개되고 식물원에는 여기저기 눈길을 끄는 곳이 있지만 내게는 뭐니뭐니 해도 일본정원(The Japanese Hill and Pond Garden)이다.

일본인 ‘타케오 시오타(1881-1943)’가 1905년 도미, 설계한 후 1915년 완성,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봄 가을로 꼭 찾아보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준 기억을 갖고 있는 곳이다.
식물원의 파킹장 가까이 갔다. 경찰이 길을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나보다며 차를 사무실 가까이 파킹하고 걸어가기로 맘 먹었다. 이왕 그럴 바에야 60만이 묻혀있는 그린우드 공동묘지(Greenwood Cemetery)를 막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이 묻혀있는 2006년 역사적 기념지(Historical Landmark)로 지정된 곳이다. 1838년에 478에이커에 남북전쟁 당시의 전사자들도 묻혀있는 아름다운 묘지다.

결혼식 날 성당의 계단을 내려오다 사살당한 신부 메롤라 볼타(Merola Volta)의 무덤을 막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실물보다도 더 크게 만들어져 있는 볼타의 시신은 가슴에 꽃다발을 안은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은 처연한 아름다움이자 우리 삶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
다. 누워있는 그녀의 뒤쪽에는 하늘로 향한 십자가가 뭔가를 상징하듯 서 있다.사무실 가까이 차를 세워둔 후 공원을 가로질러 식물원 입구에 다달았다. 그 사이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안내원이 빨강 안내서를 주었다. ‘Sakura Matsuri’(Cherry Blossom Festival)이라 씌여 있었다. 아, 이 때문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구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8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식물원은 사람들로 붐비고 여기저기서 (일본)문화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벚꽃 축제는 1982년부터 시작, 올해로서 26년째를 맞고 있다. 첫 해 다녀간 사람만도 5만5,00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일류’(日流)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벚꽃이 피어 있었고 연못에는 금붕어가 노니고 게이샤 차림의 여인들이 공연이 있는지 지나가고 있었다. 씁쓸했다. 퀸즈식물원 한인후원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2002년 9월 12일 목요일, 9.11 테러 1주년 하루 다음날. 가을 석양 무렵, 첫 행사가 머리를 스쳐가고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4만여달러의 지원 후 후원회는 아무런 설명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퀸즈 식물원의 한인후원회를 죽였나? 왜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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