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나는 정말 대통령감인가

2007-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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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종업원을 구하거나 단체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을 찾다 보면 이런 말을 할 때가 많다. 어떤 자리에 사람을 쓸려고 하면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자질이나 능력, 적성, 열의 등을 제대로 갖춘, 말하자면 쓸만한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아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서 제대로 쓰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같은 조직사회의 시대에는 사람의 중요성이 소홀히 생각될 수도 있다. 조직이 잘 안정된 회사나 단체는 어떤 사람이 맡아도 그럭저럭 굴러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고 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빼면 조직은 없어지고 만다. 사람을 잘 쓰면 조직은 점점 더 성장 발전하고 그저 그런 사람을 쓰면 현상 유지는 하겠지만 사람을 잘못 쓰게 되면 조직이 삐거덕거려 지탱조차 어렵게 될 것이다.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은 대선 시즌에 접어들었다. 대선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계 뿐 아니라 각계에서 줄서기가 성행하고 있고 후보들은 지연, 학연과 그밖의 인맥을 엮어 지지층을 결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신문 지면은 온통 대선후보들에 관한 이야기로
뒤덮고 있고 한국 정치와는 관계가 별로 없는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도 대선후보 지지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그러나 지금 대선 후보로 나타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한 대통령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사람들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그 나름대로 경력을 쌓아왔고 또 어느 정도 식견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대통령을 하기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정도의 식견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부지기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감이라면 그 위에 어떤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는 사명이 있다. 그러자면 우선 사리사욕과 파당을 초월하는 희생정신이 있어야 하고 모든 국민의 힘을 이끌어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또 국가와 국민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철한 애국애민의식과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런 사람들인가.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보다는 어느 파당과 손을 잡으면 유리하고 어느 지역과 연합하면 표를 많이 얻을 수 있는가, 또 어느 누구를 포섭하면 지지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가 등에 몰두하는 인상이 짙다. 말하자면 대통령 후보는 많은데 진정한 대통령감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종교지도자의 경우 조금만 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승려나 목회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종교지도자가 된다고 진정한 종교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종교적 체험이나 깨달음을 통해 거듭난 사람만이 진정한 종교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이나 투철한 희생정신이 없이 정략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이 된다한들 진정한 대통령감은 아니다. 집을 지을 때 대들보로 쓸 나무가 있고 서까래로 쓸 나무가 있는데 서까래 감으로 대들보를 썼을 때 어떻게 될까. 대통령을 이렇게 뽑으면 결국 나라가 어려워지고 국민이 힘들게 된다.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어느 후보의 지지율이 몇 퍼센트이고 누가 유력한 후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이 지지율이라는 것이 그 후보의 절대적 신임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후보의 전력, 지역성, 상대자의 비교적 우위 등 피상적인 정보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수 십명의 후보가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진정한 대통령감이 나온다면 사태는 일거에 반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강영훈씨가 현역 육군 대령 때 국방부차관에 기용되어 경무대에서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이승만대통령에게 자신이 국방부차관의 자격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그래서 이대통령은 그의 차관 임명을 취소해 주고 대신 전방의 사단장으로 발령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대선에 후보로 나선 사람이나 또 앞으로 후보로 나올 사람은 “나는 정말 대통령감인가” 하고 심각하게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정말 대통령감이라면 모든 정략적 수법을 떨쳐버리고 국민 앞에 그 진면목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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