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막에서 불어온 모래바람

2006-1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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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2006년 미국 중간선거일인 11월 7일 화요일 오전 10시시경 들린 투표소에는 열명 정도의 자원봉사자인 노인들이 앉아 잡담을 하고 있고 한산하고 조용했다.선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한 무감각한 표정과 생기없는 칙칙한 노인들의 피부는 이 초겨울의 싸늘한 냉기까지 감돌게 하고 있었다.
선거본부 통계로 내가 사는 스태튼아일랜드의 유권자 수는 2,000여명이고 투표율의 7%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선거 유세를 누비고 다니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치인들이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선거 공약과 초 박빙 경합지대에서 벌어지는 경쟁 후보와의 불꽃 튀는 설전은 이전투구라는 고사성어를 방불케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으로 인신공격을 퍼붓는 정치 드라마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의 유권자들의 쟁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전쟁의 좌절감이다. 2003년 미군은 이라크 수비대의 저항 없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시내를 관통하였다. 시내로 진입한 무장한 미군들이 사담 후세인의 웅대하고 화려한 넓은 궁전을 점령하고 총부리를 겨누며 사방을 누비고 다니는 장면을 앵커맨이 TV 화면에 생생히 보도하였다.
궁전의 정교하고 신비한 고대 상형문자가 새겨진 대리석 벽에는 천박한 권력이 무너진 독재자의 대형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라크를 점령하던 날의 군인들의 사기가 넘쳤다. 독재자로부터 이라크 국민의 해방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국가로 탄생시킨다는 명분이 있었다.그러나 이라크 침공이 3년 반이나 지나면서 미군 사망자가 늘어나고 전쟁의 명분도 잃어가고 있다. 마치 바퀴가 튕겨 빠져나간 수레가 진흙탕에 빠져서 꼼짝도 못하고 있듯이 전쟁은 수렁 속에 빠져 있다.
이라크 침공 이후 집중보도 되었던 충격적인 기사를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직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무차별 폭격으로 온 가족을 한 순간에 잃고 혼자 살아남은 12살짜리 소년의 양쪽 팔이 잘려나간 기사였다.

의료시설이 파괴되어 기능이 마비된 병원 침대에 두 팔을 잃고 나무토막처럼 누워있던 초첨을 잃은 소년의 절망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러나 이런 비극은 시작일 뿐 지금도 이라크는 하늘을 치솟는 불기둥, 무너지고 파괴된 건물, 음식, 생활필수품도 물도 부족하고 생계도 어려운 삶의 뿌리를 잃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다.
이라크 시내는 총탄과 잿더미 속에서 죽은 어린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아랍여인의 절규, 폭력, 암살, 납치, 찢어진 종파간의 복수극의 피로 적시고 있다.

지금쯤은 네오콘 주역들이 군사력으로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슬로건으로 이끈 이라크 침공은 악몽으로 마뀌었다. 지금쯤 그들은 중간선거 참패로 얼어붙은 차가운 현실의 체감온도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까?
이번 선거의 민주당 압승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기 보다 이라크 전쟁의 실책을 저지른 무능한 정부를 겨냥해서 집중적으로 쏘아댄 화살이다.
중동의 이라크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모래바람은 미국 중간선거에도 불어닥쳤다. 이라크에 참전하고 있는 거친 모래바람으로 충혈된 눈으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군병사들이 매일 시달리고 있는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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