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코비드 이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는데, 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섭섭하기는 마찬가지다.
옛 일이지만, 대한극장과는 인연이 깊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때. 언니와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대한극장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게 되었다. 갑자기 초딩 언니가 영화를 보자고 했다. 크레오파트라(당시 간판의 표기가 그랬다)가 상영 중이었다.
나는 크레오파트라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언니를 따라 영화관에 들어갔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영화가 끝났다.
밖으로 나와 서둘러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깜짝 놀랄 정도로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카펫에 돌돌 말려 있던 크레오파트라가 더럽고 숨이 막혀 힘들었을 거란 걱정을 한 기억이 난다.
엄청 야단을 맞았지만, 우리는 약속한대로 끝끝내 어디서 시간을 보냈는지 말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맞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나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이 없더래서 더욱 억울했다.
다음 날. 대한극장 근처에 있던 KBS 방송국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귀가하며 우리가 전날 밤 어딜 갔었는지 다 안다고 했다. 아버지 손에는 과자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 직장 동료 한 분이 지나가다가 우리가 극장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걸 보았단다. 그래서 급히 과자 상자를 사서 돌아왔더니 극장으로 쏙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대한뉴스가 떴다. 거기서 아버지가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보고도 모른 척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부부싸움을 한 게 며칠 되지 않았고, 내게는 표창장보다 그게 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는 끝끝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엄마는, 언니는, 나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크레오파트라는 여러 번 다시 봤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돌아가실 참이며, 언니와는 멀어졌고, 나도 여러 사람과 헤어지고 이어지고 새로이 만나며 여기까지 왔다.
추석도 지났으니 2024년도 분기점을 넘은 지 오래다. 사라지는 것이 있어 그 자리를 메꾸며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도 하겠지만, 사라짐과 생김의 이음매는 흐려서 그저 모든 건 물처럼 흘러 망각의 바다로 간다.
대한극장은 이제 이름을 잃고, 거기 기댔던 시대도 함께 기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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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