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살 때는 종교 생활을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1980년 미국에 이민 오면서 처음 캘리포니아 애나해임이란 곳에서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곳은 한국 동포들을 만나려면 교회를 나가야만이 교제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 수개월이 지나 날이 갈수록 믿음이 자라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고 세례도 받고 집사직분까지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1984년 뉴욕 후러싱으로 이주하고 보니 이곳에 많은 한인들이 운집해 살고 있었으나 특히 노인들은 갈 데가 없다보니 집구석에 틀어박혀 지내야 하고, 고작 커피숍에 나가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광경을 목도하고 후러싱 노인회를 창설 매일 20~30명씩 회관에 나와 바둑, 장기, 화투 등으로 오락을 삼고 영어 강의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그 후 1989년에는 뉴욕에서 유일한 노인기관 상록회의 14대, 16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회관도 개수하고 여러 프로그램도 운영하면서 활성화에 주력했고, 명절 때는 중학교 강당 빌려 500여명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경로잔치도 베푼 바 있다.
또 1999년에는 한미충효회를 설립해 효자 효부를 발굴, 시상식과 경로잔치를 23회째나 개최해 효 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
2001년에는 후러싱 경로센터를 운영했는데 매일 150여명 노인들의 무료 점심 프로그램을 실시, 여러 가지 오락, 라인댄스 등 즐거움을 제공했다.
또한 2004년에는 노인유권자연합회를 결성, 후러싱, 브롱스, 브루클린 등 지역에 17개의 지부를 형성 유권자 등록, 투표독려 등에 힘쓰며 특히 한인 정치인 육성 배출하는 운동도 전개해 큰 성과를 이룬바 있다.
또한 장학재단도 설립해 우수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 자라나는 꿈나무 육성에 기여하기도 했다.
팬데믹 전까지는 아침 일찍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렸으나 그 이후로는 집에서 새벽 5시 반에 기상 세수 단장하고 기도를 드린 후 성경 읽기, 큐티, 묵상 시간을 갖는다.
이상 열거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때그때마다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부어주심으로 손대는 일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역사해 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런 연관을 통해 하나님을 모르는 많은 심령들을 교회로 인도하다보니 순복음 뉴욕교회에서 전도왕 대상까지 받게 된 영예로운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사회에 헌신 봉사한 사람으로 알려저 대통령상을 비롯, 뉴욕주지사, 뉴욕시장, 연방 주 상, 하의원, 정치인, 한인단체, 기관장 등으로 부터 받은 상패, 상장이 무료 60여개에 이르는 형국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세계한인의 날을 기하여 지난 10월30일 한국 정부 대통령으로 국민훈장과 기념 손목시계까지 하사해주신데 대해 감개무량 감사를 드린다. 이 역시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믿고 진정 하나님께 새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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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