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추(晩秋)

2006-11-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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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11월은 그 정체가 좀 아리송하다. 계절상의 소속도 분명치 않은 것 같다. 가을과 겨울의 고빗길에 있으니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11월은 저물어가는 가을이다. 그래서 ‘만추’라고 하면 11월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게 갠 날이어야 가을의 서정이 느껴진다. 을씨년스럽게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이면 바로 겨울의 황량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물론 같은 날씨라 해도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같은 가을을 노래하지만 서양의 시인들은 감미로운 낭만을 안겨주는 10월을 즐겨 부르는 반면 한국의 시인들은 예부터 11월을 즐겨 불렀던 것이다. 그것은 청승맞은 생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구슬픈 심경에 젖어들게 하는 일들이 많았고, 또 그런 심경에는 11월의 계절이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몽주가 살해된 다음에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에게 이런 시가 있다. 不見鄭生久, 秋風又颯然, 新篇最堪, 狂態更誰憐. “그대 못본지도 오래됐구려, 하마 가을바람 쓸쓸히 부는데, 새로 지은 시 한편은 잘 읽었다만 이 몰골 뉘라서 가여워하리”이 시 속의 가을은 분명 11월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게 도은의 심경에 가장 잘 어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단종임금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양녕대군은 이렇게 노래했다. 龍御歸何處, 愁雲起越中, 空山十月夜, 痛哭訴蒼穹. “아아 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구름도 애닯이 감도는 영월의 텅 빈 10월의 밤하늘을 향해 야속함을 울부짖는 이 마음이여”단종이 정확히 음력 10월에 죽었는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어쩐지 꼭 그랬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는 반드시 11월이었어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사화에 말려들어 희천(熙川) 유배되어 있던 김굉필(金宏弼)의 다음과 같은 시도 음력 10월에 지은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가이 사노니 오가는 이 없고, 밝은 달만 쌀쌀히 비춰오누나, 내 생애 어떤 가를 알고 싶거든 앞 강물 뒷동산에 물어나 보렴”2006년도 새 달력을 벽에 걸어놓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문득 두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에 눈길이 갔을 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구슬진 감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름 내내 검푸르던 녹음들이 시나브로 그 색깔이 퇴색되면서 단풍으로 변해가더니 이제는 낙엽이 되어 오가는 행인의
발길에 지저분하게 밟히는 신세가 되고 있다.

이슬을 담은 국화의 청초함도, 텅 빈 들에 홀로 핀 장미꽃의 오만함도 모두 다 사라져가는 11월이여! 문득 그 옛날에 부르던 가곡 한 구절을 흥얼거려 본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고향 그리워. 맑은 하늘 쳐다보니 눈물집니다”(이홍열 작곡 ‘고향 그리워’)
이역만리 미주땅에 이민와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는 우리네 이민생활이지만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우리들의 인생의 열매도 알차게 영글어가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그래야만 곧바로 닥쳐올 엄동을 무난히 넘어갈 수 있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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