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운 사람들

2006-11-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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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일본인으로 사회문제 중심의 글을 쓰는 친구한테서 ‘새로운 가족’이란 책을 보내왔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가족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할 만큼 그 형태는 다양해졌다. 우리 동양인의 감각으론 대체로 가족답지 않은 혈연적인 연결이 없는 가족도 많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가족, 그래서 우리들이 미처 못 보던 것을 그 속에서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고.

또한 저자는 외친다. ‘세계화 시대의 가족은 무엇인가. 유대인 부모와 한국인 아이, 아빠가 둘인 게이 부부의 아이, 엄마가 레즈비언인 아이, 아빠가 정자 제공자 536번인 아이, 당신 아이 내 아이 우리 아이가 존재하는 오늘날의 가족 - 그것은 해체인가 변화인가’ 책의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창작이 아니고 실제로 많은 가족을 인터뷰하여 얻은 하나의 사실 기록이다.
이런 현상은 오직 미국에만 있는 독특한 것일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유’를 좇아서 미국의 뒤를 확실히 뒤따르게 될 것이다. 거기에 시차가 있더라도. 그런데 특기할 사항은 동성애자들도 가족을 형성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란 아빠 엄마의 역할이 있고, 거기서 자녀가 자라는 것을 가리킨다.


왜 그럴까. 어쨌든 그들은 어설프게라도 가족의 형태를 꾸민 속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것이 삶의 본능이라고 본다.또다른 변화는 불임증 부부의 경우, 보이는 부모와 보이지 않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양부모에서 자녀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엄마 아빠의 도움으로 태어난 어린이들의 수효가 늘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잘 기록되어야 혹시라도 자녀의 건강 상태에 문제가 생길 때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일반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한국학교 학생들도 다양해졌다. 미국 성을 가진 한국 태생의 학생, 현재는 한 가족이지만 형제, 자매가 다른 가정에서 입양된 학생, 미국인이지만 한국문화에 흥미를 가지고 통학하는 학생, 자녀와 함께 공부할 수 밖에 없는 부모 등 색색이다. 이렇게 학생만 달라진 것이 아니고 요즈음 학부모는 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전연 한국어를 모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일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이 다양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린이들이 태어나는 방법, 자라나는 과정, 부모의 유무 등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생활 환경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어린이들의 생명력은 대부분의 경우 장애를 뚫고 나가는 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떻게 자라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변화는 영원한 것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앞에 예거한 변화는 흔히 말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 근본적인 문제이다.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태도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사회에 등장하는 소위 ‘새로운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명체이다.

하등의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들 자신이 자각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태어난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처럼 이 세상에 나왔다.이러한 다양성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게 할 것이다. 더 다양한 것을 창조할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색다른 문제를 생산할 지도 모른다고 가정할 수 있다. 무엇이나 장단점이 있으니까 양쪽 영향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그렇다고 이 사회에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새로운 가족’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낳은 부모, 기른 부모, 그리고 아이’ ‘아빠가 둘’ ‘독신자의 아이’ ‘처음부터 없는 아빠’ ‘부모이면서 부모가 아닌 모호함’… 등 쏟아지는 자극적인 어휘들.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이다.

결론을 짓는다. 어떤 형태의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더라도 우리는 그들과 친구가 되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기본 단위는 가정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동성애자들이 왜 가족의 형태를 꾸미려고 애쓰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사실을 전달하고 있지만 행간에 있는 메시지는 ‘건강 가족’의 중요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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