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중간선거 소감

2006-11-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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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 7일 실시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는 예상대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했던 시대는 끝나고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는 민주당 시대가 개막됐다. 민주당은 연방의원 뿐 아니라 주지사와 그밖의 지방 선출직에서 크게 진출했다. 공화당이 행정부와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도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치를 해왔고 부패를 일삼은데 대한 국민의 심판은 이처럼 매섭게 나타난 것이다.
공화당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라크전쟁이었다. 2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이라크전쟁이 가장 큰 이슈였다. 그 때는 국민들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을 부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표를 주어 대통령에 재선했을 뿐만 아니라 상하 양원까지 공화당에게 맡겼다.

그런데 2년을 지내면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라크전쟁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해결의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미군의 사망자 수는 늘어가고 있는데 부시는 대책없이 미군을 이라크에 계속 주둔시키겠다고만 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국민들은 변화를 위해 민주당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4년마다 선출되는 대통령의 임기 중간에 실시되는 중간평가와 같은 성격이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전반기 실적에 따른 국민의 평가를 정치 구도에 반영함으로써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가 중간선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부시행정부는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과 정책적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시대통령이 지금까지 감싸오기만 했던 렘스펠드 국방장관을 선거 직후 경질한 것만 보아도 변화가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중간선거를 보면서 한국의 선거제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는 중간선거가 없다. 대통령은 한 번 당선되면 5년을 하고 국회는 총선거로 모두 동시에 뽑아 동시에 임기가 끝난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집권당의 위상은 대선과 총선 때 확정되면 변함이 없다. 지방선거가 중간에 있지만 이 선거는 중앙정치의 권력구조를 직접 바꾸지는 못한다.

한국에서 중간평가가 시도된 적이 있었다. 노태우대통령이 후보로 공약한 사항이 중간평가였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중간에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이었다. 이 공약은 국민들의 마음에 안도와 공감을 주어 그의 당선에 큰 보탬이 됐다. 그런데 막상 임기 중반이 되어 중간평가를 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야당이 오히려 반대했다. 그 당시 야당은 YS의 통일민주당과 DJ의 평민당이었는데 중간평가를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DJ가 앞장 서 중간평가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래서 중간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정계에서는 이 중간평가의 유보가 거액의 돈으로 거래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번 김대중 정권과 현재의 노무현 정권은 흔히 소수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소수정권은 다수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아니라 소수파의 정부라는 말이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정부가 소수정권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한국의 성거풍토를 모른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대중은 한국에서 도저히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좌경사상 때문에 그랬고 특히 호남 출신이라는 지역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역감정의 최대의 피해자라고 했다. 그런데 김종필과 소위 DJP연합이라는 것을 하면서 보수층의 표를 얻었고 호남 플러스 충청의 몰표를 얻게 되었다. 그는 지역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대통령이 된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반미 촛불데모, 수도권 이전 공약, 젊은층의 인터넷 바람 등이 휘몰아치면서 이 바람을 타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 정책상 실패가 계속되면서 거품이 빠져 노무현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10%대의 지지를 받는 소수정권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5년의 그의 임기동안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 주는 제도적 장치는 없다. 여론이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대통령이 오기와 배짱으로 권한을 행사하여 국민을 허탈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럴 때 미국과 같은 중간선거제도가 있다면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잘 반영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선거비용의 절감과 선거운동으로 인한 병폐를 없애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모든 선거를 한꺼번에 실시하자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그것은 비민주적인 발
상이다. 국민을 선동하여 한꺼번에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잘못된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간선거와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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