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스라엘과 한국의 안보 불안

2006-08-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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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인간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취중에, 더 평소에 품고 있던 본심을 내뱉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최정상급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멜 깁슨은 취중운전 과속으로 적발됐을 때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은 유대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중얼거렸다. 영어의 표현대로 혀가 입속의 미끄러운 침 속에 잘못 미끄러진(Slip Tongue)것이다. 술이 깬 후 두 번이나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속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닐 터이다.이 사회에서는 금기(Taboo)로 되어있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자기의 생각을 대변해 준 것처럼 속이 후련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14일, 두 병사의 납치사건으로 시작된 전쟁이 34일만에 불안한 휴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상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강한 군사력만 과신한 채 일방적으로 쳐들어간 후 전선이 없는 전쟁,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 21세기의 특수형의 전쟁을 치루면서 1967년의 ‘6일전쟁’의
핑크빛 회상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감을 깨달았을 것이다.
당초 며칠이면 헤즈볼라를 전멸시킨다는 계산은 물거품이 되고 초창기에 손사래쳤던 휴전협정을 정식 국가도 아닌 게릴라 단체와 맺은 것이다.
승자와 패자의 구별은 휴전 후에 양측의 상황만 봐도 분명해진다. 아랍세계는 지금 축제 분위기이며 당사자이며 피해자인 레바논 국민들은 그 가난 속에서 더우기 재산까지 잿더미로 변했음에도 걱정은 고사하고 신이 나 있다. ‘헤즈볼라’가 모든 피해를 복구해 준다고 벌써 신청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랍세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헤즈볼라는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되는대로 재무장한 후 사생결단의 도전을 할 것은 공공연한 화제가 되었다.이스라엘의 면적은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와 비슷한 면적을 가진 한국의 5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나라다. 이번 전쟁을 경험삼아 헤즈볼라는 구식 ‘카튜사’ 로멧이 아닌 폭발력이 훨씬 크고 이스라엘 전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신무기로 이스라엘을 충분히 함락시킬 수 있을 만큼 무장한
후 시도할 것은 비록 전술전략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다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이 참패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이 걸린, 돌이킬 수 없는 천추의 한이 될 실수를 한 셈이 된다.

그러는 한편 아랍세계에서는 그들이 58년간 꿈꾸어 오던 ‘이스라엘을 세계지도상에서 지워버리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손에 잡힌 듯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 모른다.한 국가의 존폐 문제가 걸린 이런 심각한 상황도 이건 어디까지나 남의 얘기다. 북한과 공식적으로 휴전중인 한국은 요즈음 ‘전시 작전통제권’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에선 우리도 이젠 자주국방을 할 때가 됐다고 하고, 다른 편에선 미국 없이는 안보 불안 때문에 때가 이르다고 논쟁이 뜨겁다.
한 마디로 줄여서 한국의 안보문제는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이 쳐들어 올까봐 걱정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100% 북한 때문이다. 비록 국방백서에 주적이란 말이 지워졌다고 주적인 사실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안보관은 북한을 어떤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지게 된다.

생물학적인 DNA의 유사성을 내세우며 ‘민족’이나 ‘자주’를 외치는 한쪽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사실이나 현실적 감각의 토대 위에 혈통과 안보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보는 다른 쪽도 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논쟁은 서로가 이길 수 없다.만일, 요즈음 민족이나 주체를 주장하는 젊은 학자들이 나에게 왜 전시작전통제권 인수를 반대하느냐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전시작전통제권 인수는 주적인 북한당국이 그토록 원하기 때문에”라고 대답하고 싶다.이스라엘이나 한국 국민, 공히 언젠가는 안보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날이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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