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이런 ‘표리부동’ 사라져야 한다

2006-08-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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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준 응원 열기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전국민이 응원단이었고 전국이 응원장이었다. 아니 국민 뿐 아니라, 또 한국 뿐 아니라 세계와 해외동포가 모두 응원에 총동원된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사상 유례없이 단결된 애국심, 그 애국심의 중심에는 젊
은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이달 한·중·일 3개국의 중고교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은 전쟁이 나면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사람이 전체의 10%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중국은 14%, 일본은 41%였다고 한다. 자기의 나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느냐는 자긍심에 대해서는 한국 청소년이 76%가 “그렇다”고 했고 일본 청소년은 48%가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한국 청소년들은 76%가 애국심은 있으면서도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사람은 10% 밖에 안되니 이만저만한 표리부동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의 표리부동 현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제작 방영되는 드라마들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한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타민족에도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있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나 제작기술이 뛰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좋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고 우리가 부딪힐 수 있는 시련을 이겨내고 고진감래로 성공을 이룩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 과정에서 악은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잘되는 권선징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런 드라마와는 정 반대이다. 한국의 사회에서 드라마처럼 힘 없고 착한 사람이 결국 승리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일 뿐이다. 오리혀 착하지 않더라도 힘있는 사람이 대접받고 지배하고 숭리할 수 있는 곳이다. 힘이란 돈, 권력, 명예, 사회적 지위, 폭력 등 모든 종류의 힘이다. 그런 힘 중에 어떤 힘이라도 없다면 착하고 올바른 것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도덕적 가치가 힘의 원천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힘을 얻는 방법이나 힘을 행사하는 방법이 악하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요즘 코드 인사가 그렇게 비판을 받아도 대통령이 힘을 가졌기 때문에 또 코드 인사를 자행한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가장 애를 먹는 것이 이런 표리부동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즈니스 이야기를 할 때 세부적인 사항은 하나 하나씩 모두 합의해 놓고 마지막에 서명을 할 때 전부 부인해 버리는데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인도 같은 한국인을 가장 힘든 상대로 생각할 때가 많다. 요즘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하는 작태를 보면서 자괴감을 가질 때도 있다.또 다른 표리부동의 예를 우리는 친북 반미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반미를 애국과 동일시할 정도로 미국에 적대적 감정을 보이고 있다. 미국 때문에 남북통일이 안되고 미국이 가장 큰 적국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미국제품이다. 또 영어를 배우느라고 조기교육을 받고 미국유학을 오고 미국에 살고 싶어한다. 미국을 그토록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강정구의 경우, 그의 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 공부를 시켰고 미국직장을 얻어 미국에서 살게 하고 있다. 그밖에도 미국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열린우리당 고위층의 자제들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표리부동한 위선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또 북한을 찬양하고 김정일을 지도자로 추켜세우고 있는 한국내의 친북좌익분자들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허용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그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만약 북한체제가 그렇게 좋고 김정일이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라면 왜 북한으로 가지 않고 남한에서 시끄럽게 하고 있을까. 그들 중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 중에도 북한을 찬양하고 미국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한 경우에는 미국이 우리민족의 원수라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것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결정한 일이며 미국에서 사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나쁘고 북한이 그렇게 좋다면 북한에 가서 사는 것을 그 누가 말리겠는가.

미국에서 주는 혜택은 모두 받으면서 이렇게 표리부동한 일을 하는 한인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도 북한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미국정부에 부탁해서라도 그런 사람들을 평양으로 보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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