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2006-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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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가정상담소 패밀리 프로젝트 디렉터)

미국은 계속되는 이주자들과 그들의 2세, 3세가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건국의 이념 역시 “풍요롭고 개방된 땅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평등하게 부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개척정신과 자유사상을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 꿈과 희망을 가지고 많은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미국으로 유입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풍요한 사회상의 이면에는 다인종·다민족의 혼합에서 생기는 심한 인종차별과 독점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마련인 빈부 계층간의 대립이 늘 미국 국내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즉, 이민자들에 의해 건국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상담소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이 많이 있으며, 특히 가정내의 문제로 인해 찾아오는 한인들에게서 더 더욱 많이 발견하게 된다.


언어적 장벽은 이민자로서 겪는 가장 흔하면서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성인이 되어서 미국사회에 뛰어든 이민자들은 이에 대한 어려움을 더욱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병원을 가고 싶어도 통역하는 사람들이 없을 경우,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이민자들의 몫이 되어 버린다. 경찰서를 가거나 법원을 가야할 일이 있어도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표현해 줄 수 있는 통역관이 없다면, 그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또한 이민자가 처한 현실이다. 그나마 퀸즈지역은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통역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너무나도 받기 힘든 서비스중 하나이다.

상담소를 찾아오는 분들 역시, 언어적 장벽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제때 치료를 받거나 신고를 함으로써 본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이러한 언어적 장벽은 한 인간을 사회로부터 얼마든지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문화적 장벽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화적 장벽은 언어적 장벽과는 달리 특별히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지나칠 수 있지만 오히려 피부로 느끼는 바는 크다. 예를 들어, 이민을 온 부모와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간에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은 어느 정도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방법에 있어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
다.

부모와 자녀간에 의견이 충돌될 경우 자녀는 부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부모의 말에 존중하는 것이 미덕인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그러한 태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계속될 경우 학교 생활이나 친구관계에서 소외될 수 있는 요지가 된다. 상담소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자녀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갈수록 어렵다고 토로하는 부모님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한 문제는 언어적인 요인보다는 부모와 자녀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의 문화적 특성상 우리들의 가족의 문제를 외부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꺼려한다.

가족의 문제는 가족에 의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으며, 남이 아는 그 순간
수치심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가족 내의 문제를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제 안에 있으면 그 안에 싸이클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통해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 즉, 가족 구성원간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특히, 가정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의 경우 더더욱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폭력은 단순히 ‘가해자가 피해자를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 만이 아니라, 감정적, 정신적, 성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상 마치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나면 의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가족안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금까지 바라본 언어적, 문화적 장벽 이외에도 한인이민자들이 겪는 문제는 다양하다. 그러한 장벽들을 어깨에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미국사회의 한 구성원들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뉴욕가정상담소는 이러한 분들을 위해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안에서 도움이 되고자 한다. 즉,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함께 나누는 신문고와 같은 역할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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