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면피의 표본들

2006-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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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오(우드사이드)

지자체 선거가 끝난지 두달 반이 가까워 온다. “이번엔 야당이 90% 이상을 차지했으니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겠지”하고 기대를 했으나 역시 잃은 도끼나 얻은 도끼나 그게 그것, 오십보 백보였다.원래 우리 국민(유권자)들은 아래로는 지방의회 의원으로부터 위로는 시.도지사를 포함한 국회
의원까지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오죽했으면 저들의 입후보 시절 떠벌리는 공약(公約)을 空約으로 까지 표현하며 약속한 공약이 물거품이 되면 공약의 불이행이나 미이행(未履行)이라 하지 않고 ‘식언(食言)’이라고 표현하며 비하한다.

저들은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공약을 남발하고 지역민들의 머슴이 되겠다고 침을 튀기며 유권자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지옥이라도 따라가 표를 달라고 굽신대며 애걸한다. 그러나 당선만 되어보라. 얼굴 한 번 보기가 마른날 별 보기 보다 더 어렵고 머슴은 커녕 무서운 상전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그러나 어쩌랴. 민주정치는 선거에 의해 이루어지니 투표를 안 할 수도 없고…


지난 8일 민선 4기 16개 광역단체장들은 서울에서 시.도지사협의회를 열고 현재 차관급인 시.도지사의 직위를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담은 29개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사실 이 사안은 지난달 하순경 물난리가 한창일 때 경기도가 처음 제안했으나 여론의 뭇매로 슬그머
니 감추었다가 이번에 전격 채택했다는 것인데 이들의 직위 격상에 대한 이유가 참 가관이다. 모 일간지 기사를 그대로 옮겨보면‘서울시장을 제외한 시.도지사의 직위 수준이 과거 임명직 때의 관행에 따라 차관급으로 단체장간 형편에 맞지 않고 많은 광역단체장들이 부총리, 장관 또는 다선 국회의원 경력을 알고 있어 차관급 예우는 격에도 맞지 않는다. 직위 격상 목표가 임금인상이 아닌 직위 상향조정에 있는 만큼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협의회 기획행정관이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직위가 장관급으로 격상되면 연봉이 8,250여만원에서 8,800여만원(6.7% 인상)이 된다는데 이래도 돈에 대한 매력(유혹)은 없다고 하겠는가? 6.7%면 노동자들이 파업으로도 얻어내기 힘든 인상률이다. 더우기 금년부터는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유급화 되면서 지방자치 재정이 더한층 어려워짐에도 불구하고 내 배만 불리겠다는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해서야 어디 지역민들 살리고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단체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단체장 자리가 차관급에 해당하는 직위라는 것을 모르고 출마했을 리도 없을텐데 이제 와서 격에 맞네, 안 맞네를 따진다면 애초에 출마부터 하지 않았어야 옳지 않겠는가? 한 단계 낮은 격으로 일을 훌륭히 해내는 것이 진정 능력이 아니겠는가? 정말 임금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격 때문에 체면을 구기고 격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면 능력 부족이니까 사퇴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임금에 관심이 없다면 직위가 격상되면 인상되는 부분의 임금만이라도 지방 재정에 보탤 것을 제안한다.

정부의 지방세 인하에는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임금은 올려라? 진정 철면피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벼룩이도 낯짝이 있고 개미도 허리가 있다. 무슨 업적이나 쌓아놓고 돈타령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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