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도둑 고양이

2006-08-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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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언제부터인가 다니는 직장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까맣고 하얀 털을 가진 도둑고양이는 사람이 지나칠 때는 빠른 속도로 도망가 버리곤 하였다. 지나다니는 사물들을 경계하는 것이 그들의 본능인가 보다. 사람이 거처하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도둑고양이 치고는 상당히 예쁘게 생겼다. 암컷이다. 직장 동료들이 고양이를 알게 된 것은 직원 한 사람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면서 부터였다. 쥐들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도둑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하여 쥐들을 없애 주기 위한 전략도 들어 있었다.

그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갔다. 쥐의 천적은 고양이다. 아무리 집고양이가 아니고 도둑고양이라 하더라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도둑고양이가 나타난 후 간혹, 주차장 안에 있는 쓰레기통 주위를 지나다니던 쥐들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니기만 해도 쥐들은 무서워 나타나지를 않는 것 같다.
전에는 사람이 나타나면 쏜살같이 도망가던 고양이가 이제는 슬슬 눈치만 보며 멀리 도망가지를 않는다. 오히려 밥 줄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사람이 지나다니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곤 한다. 도둑고양이에서 집고양이로 변해가는 모습 같다. 반은 변한 것 같다. 사람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처음보다는 많이 느슨해 졌다.


어느 정도 여러 날이 지났을 때 수고양이 한 마리가 도둑고양이와 여러 번 같이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 수고양이도 도둑고양이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되었을까. 도둑고양이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새끼를 밴 것 같았다. 고양이의 배가 불러오면서 직장 여성 직원들이 그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더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배가 점점 불러 고양이는 다니는 것조차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어디엔가 새끼를 낳아놓을 곳을 마련한 것 같았다. 고양이 밥을 주는 직원은 전 보다 더 많은 양을 주었다. 고양이의 젖꼭지가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새끼를 위함인지, 열심히 먹었다. 고양이에게 있는 새끼를 사랑하는 동물의 본능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언제 고양이가 새끼를 낳을 것인가” 혹은 “몇 마리나 낳을 건가”하는 이야기꽃이 서로 오고가곤 하였다. 배가 불러서 걸어 다니기 힘들어 하던 고양이가 하루는 배가 푹 꺼져서 나타났다. 드디어 새끼를 낳은 모양이다. 옆으로 불쑥 나왔던 고양이의 배는 홀쭉하게 날씬해졌다. 그래도 아주 살이 쏙 빠지진 않았다.
고양이는 전 보다 더 많은 양의 먹이가 요구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고양이 밥을 주는 직원이 일 보러 나가느라 제 시간에 먹이를 못 주었다. 그러니, 도둑고양이 제 본능이 나타났다. 주차장내에 있는 쓰레기통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는 것이었다. 집고양이로 점점 변해가던 도둑고양이의 본래 모습이 나오는 듯 했다.

결국 밥 주는 직원이 일을 보고 돌아와 먹이를 주었다. 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도 배를 채우게 되었다. 고양이는 처음보다 점점 더 사람과 가까워져 가고 있다. 어디엔가 새끼를 낳고 새끼에게 젖을 물려서인지 고양이 젖은 빨갛게 부풀어 있었다. 고양이 젖은 여러 개인데 그중 두 갠가 세 개가 빨갛게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새끼를 세 마리 정도는 낳은 것 같다. 아무도 고양이 새끼가 있는 곳을 모른다. 고양이 새끼를 사람이 보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올 날만 잔뜩 고대하고 있다. 도둑고양이의 새끼들. 아무리 도둑고양이의 새끼들이라 하더라도 새끼들은 더 예쁘고 귀여울 것 같다. 예쁜 그 새끼들도 또 도둑고양이가 될 건가.

동물의 본능. 참으로 신기하다. 호랑이와 사자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 이렇듯, 인간에게만 있을 법한 자식 사랑이 동물에게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는? 그리고, 동물의 그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본능인가. 도둑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어디선가 보호하고 있다. 어미의 본능으로 젖을 먹이며 돌보고 있다. 몇 날 안 되어 새끼들을 데리고 나올 것이다. 도둑고양이. 새끼들을 위해선지 사람과 더 친해지려 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새끼를 낳아 돌보는 도둑고양이의 삶 속에 진정한 삶의 모습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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