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월과 이승만박사

2006-08-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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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호(아승만박사 기념사업회 시애틀지역회 고문)

우리 백의민족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으며 그로부터 만 3년만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건국이 세계 만방에 선포되는 감격에 젖었었다. 이 대한민국 건국, 곧 대한독립의 중심인물이 우남 이승만 박사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박사는 1960년 3월 15일 실시한 제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박사 측근들이 당선 가망이 없는 이기붕 국회의장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전무후무한 부정선거를 하였기에 그 책임을 지고 하야하는 불명예로 인하여 그 분의 크나큰 공마저 가리워지고 있음이 안타깝다.

특별히 6.25동란이 그와 우리 국민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휴전협정으로 종결되려 할 때 그는 ‘북진통일’을 외쳤으며 또한 3만7,000여명의 반공포로를 독단적으로 석방함으로써 온세계를 놀라게 한 대정치가가 되었다.
그리고 호전적인 공산주의자들의 재도발을 예견했기에 당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미국망명 33년 동안 이 넓은 미국땅을 그 옛날, 그 불편한 교통수단으로 동분서주하던 곳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다.
8월을 맞아 우리 대한민국을 세웠고 우리에게 물려준 이승만 박사의 은혜와 크나큰 공로를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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