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는가

2006-08-11 (금)
크게 작게
나정길(수필가)

나는 1989년 5월 가족을 데리고 케네디 공항에 첫 발을 딛었다. 그 이후로 18년 미국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물가가 많이 뛰었다. 그 당시 600달러를 주고서도 2베드룸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지금은 배를 주어도 채광이 좋은 널직한 방의 렌트를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 6년 전에 산 2패밀리 콘도가 현재 시세로 배가 뛰었다. 마음에 드는 주택은 이제 100만달
러를 넘어섰다.

미국도 물가 인상의 주범은 공공요금인 듯, 우편요금, 공공교통료 등 잊을만 하면 오른다.이제는 미리 올리겠다고 운을 띄운다. 39센트로 올려 2센트짜리 우표를 사서 다 쓰지도 않았는데 42센트로 올리겠다는 소식이 떠돈다.18년 전 장보러 가서 100달러 어치만 사도 샤핑 카트에 가득하니 부자가된 느낌이었다. 이제는 마음놓고 집어넣을 수 없게 되었다.나는 요즈음 주유소에서 내 차에 개스를 넣고 돌아설 때마다 지갑에서 돈을 도둑맞은 느낌이다. 옥탄가 높다는 수퍼는 포기한 지 오래다. 레귤러 30달러 어치를 넣어도 10갤론도 안된다.


주유소의 가격표는 플라스틱으로 만들 사이도 없이 종이에 긁적거려 붙였다 떼었다를 쉽게 가격이 춤춘다.만나는 한인들마다 장사가 죽어라고 안된다고 하소연이다. 한인들의 주업종은 네일가게, 세탁소, 델리가게 등이다. 소규모의 업종들은 닫을 것인가, 팔 것인가를 고민 중이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게를 팔고, 집 팔고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희망을 가져 본다. 새로운 이주는 새로운 도전을 각오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우리가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의 2세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이 미국사회에 인정받는 인물로 자라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할 수 없다면 사회 진출의 첫 발부터 묶인 셈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이 무엇을 전공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스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미국의 모든 분야가 불투명하고 어둡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되자 실업 계통의 대학을 다시 이수해야 하는 한국처럼 미국에서도 우리의 아이들이 적성과 개성이 무시당한 채 취직을 위한 진학에 몰두해야 한다면 조금은 서글퍼진다.자동차 왕국을 자랑하던 미국이 지금 어떤 지경인가. GM이 30억달러 적자로 경영 위기에 처해 있으며 포드도 1억달러 손실을 내고 있다. 외국제 차량들에 안방을 다 내어주고 품질과 가격의 혁신으로 소비자의 인지도를 바꾸어 놓기는 요원하니 미국 경제의 핵심이 흔들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미국의 해외무역 적자가 6,000억달러, 연방예산 적자가 7,000억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나라 살림도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부으며 이라크에서 전쟁을 계속하는걸까. 실질적인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되고 국제적인 인심도 잃어가는 동네 참전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을까.세계 각처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오기 위해 애를 태우며 기다린다. 아직도 미국은 기회의 나라, 희망의 나라로 남아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다소의 위안을 찾을 지도 모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