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찬호와 모짜르트

2006-08-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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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임(전 방송인)

박찬호라는 야구선수를 아시는지… 지난 94년 한양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 미국 프로야구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전격적으로 미국에 건너 온 한국인 최초의 메이져리거 박찬호…박찬호는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에 지나지 않았고 주전이 부상을 당하면 출전할 수 있는 정도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홀홀 단신 미국으로 건너 온 그는 얼마 후 당당히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섰고, 풀타임 선발투수로의 데뷔 첫 해부터 정상급 투수의 상징이랄 수 있는 두자리 승수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18승이라는 특급 투수의 성적을 올리며 그는 메이저리그의 정상에 선다. 그리고 미국의 스포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초대형 계약의 주인공이 된다. 5년에 6,5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1년에 1,00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보장
받은 당시의 계약은 메이져리그 전체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단한 것이었다.이런 인재를 국내의 그 어느 지도자나 전문가들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교의 감독들도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전문가들도 박찬호가 어떤 재목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각종 터무니 없는 루머와 치명적인 허리 부상이 그를 엄습했다. 텍사스에서의 화려한 선수 생활 대신 그에게 맞딱드린 것은 가혹한 시련과 냉정한 주변의 시선,국내에 있는 팬들과 전문가들의 배신이었다. 한국이 IMF를 겪던 시절 온 국민을 새벽잠에서 깨어나 환호하게 했던 그가 일순간에 나라 망신을 시키는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그에게 국내 언론이 붙인 별명이 ‘먹튀’였다. ‘먹고 튄다’는 뜻이란다. 거액의 계약금을 챙기고 튄 선수라는 뜻이란다. 참으로 가혹하지 않을 수 없다.

박찬호는 이미 재벌이 되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관 않고 남은 여생 편히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을 이미 벌었다. 남들은 로또라도 맞아야 만질 수 있는 돈을 벌어 놓은 셈이다. 그런데 그는 ‘야구선수로서의 자신’ 이외에는 잡념을 갖지 않은 듯하다. 3년간 부상과 씨름하며 재
활과 중단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 그는 샌디에고 파드레스라는 팀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실의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고 변함 없이 응원을 보내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

나는 분명코 ‘한국사람들이 그렇지’ 라는 식의,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내리는 단정을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 하고 싶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민족을 그렇게 과장되게 일반화하는 것을 결코 절대로, 어떤 경우라도 용납하고 싶지 않다.몇몇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는 아무래도 패배주의와 연관 있어 보인다. 누군가가 도전을 엄두내지 못해야, 불 같은 의지로 성공을 이뤄내지 못해야, 시련이 닥쳤을 때 쉬 포기해줘야, 자신들의 용기 없음이, 안일함이, 나약함이, 의지박약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저 잘난 놈’
도 나 같이 포기하고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야 나의 무능이 핑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예전에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모짜르트에 관한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궁중악사인 ‘살리에리’다.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며 신에게 끊임 없이 자신의 평범함에 대해 불평을 한다. 모짜르트를 직접적으로 살해하지는 않지만 그는 천재 음악가의 죽음을 재촉하게 되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갖고 평생 괴로워 한다. -영화 외적인 얘기지만 모짜르트는 단지 천재여서 걸작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으며 창작을 했음이 영화 속에서도 나온다. 혼신을 다한 노력에 그의 천재성이 더해져 그는 역사 속에서 천재음악가로 추앙 받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평범함에 분노를 느끼고 천재의 재능을 시기 하지만 살리에리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그의 ‘양심’이다. 평범함을 증오하지만 재능 가진자를 시기한 자신 역시 혐오하는 그의 양심말이다.우리 중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살리에리다. 우리 주변에 모짜르트 같은 천재들이 많지 않아 참으로 다행일 뿐... 살리에리 마냥 우리와 그 천재가 너무 비교되어 죽고 싶은 지경까지는 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우리 주변에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찬호처럼 말이다.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노력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다.혹시, 혹시 말이다. 우리가 그 노력하는 이들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에게 가졌던 질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살리에리가 자신의 노력으로 갖기 어려운 것에 질투를 품었다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조차 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해내는, 박찬호처럼 용기 있고 근면한 사람들을 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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