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보는 다른 시각

2006-08-07 (월)
크게 작게
장태정(회사원)

요즈음 한국인들에게는 VWP(비자면제 프로그램)이 화두가 된 것 같다. 주미대사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미국 비자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던 70년대 초반까지를 굳이 상기할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현재 한국의 미국 비자 거부율은 4% 미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비자 신청을 한 사람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받는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그런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며, 또 그들은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남긴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현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멕시코 아니면 주로 캐나다 국경을 통한 ‘인신매매 조직의 밀입국 알선’ 적발 뉴스가 미국 언론매체 뿐만 아니라 히스패닉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뉴스가 터질 때마다 적법한 비즈니스를 일구어가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현지의 동포들은 어깨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둘 바를 몰라해 한다.
가난에 견디다 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밀입국한 남미의 밀입국자들까지도 한국도 자기들 나라처럼 가난해서 몸이라도 팔아서 살려고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국민으로 취급할 때는 마음의 상처는 멍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현 정부의 VWP 가입 추진계획은 이렇게 정상적으로 비자를 받지 못해 브로커들에게 많은 돈을 지불해 가면서라도 밀입국 해서 ‘인신매매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입국시켜 주자는 계획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현재도 공식이나 비공식 통계로 5,000명 내지 8,000명의 한국인 인신매매업 종사자가 미국내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일부 정치인들만 아는 비밀은 아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은 다 선한 사람이다’거나 ‘모든 사람은 능력이 같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인신매매를 할 사람이 아니더라도 거부율 4% 이내에 속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결코 성공한 사람은 아니다. 한국에서 실패하고 살아갈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미국에나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와서 한국보다 더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미국 사회에서 더구나 가장 기본인 언어까지 통하지 않으면서 성공할 확률은 동정이 갈 정도로 희박하다고 봐야 마땅하다. 그런 사람들이 부딪치는 절벽 앞에서 택하는 것이 가족 동반자살 같은 끔찍스런 사건들이라면 그런 사건들이 얼마나 동포사회를 심란하고 어수선하게 만드는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미국인들까지도 얼마나 흔들어 놓는지를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곳 동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불법체류 증가 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의 한국인들이 일본내의 2등국민 취급을 받는 재일동포들의 지위를 보고 애당초 한국인들은 일본으로 이민해서 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문민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자격도 채 되지 않으면서 무리하게 겉모양새 이외는 별 실속도 없는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었다. 지금 한국은 OECD라는 양복은 번듯하게 차려입고 FTA라는 구두로 갈아신느냐, 아니면 짚신을 그대로 신고 있을까의 기로에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 숙성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외형적인 정부 업적 과시를 위해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를 지금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음식의 대명사 격인 김치는 아무리 급해도 빨리 익힌다고 열을 가하면 냄새가 나버리고 만다. 시원한 그늘에서 자연 숙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제 맛을 내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 그렇듯 VWP 문제도 미국이 이제는 때가 됐다 할 때까지, 즉 자연 숙성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
리가 아닌가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