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왜 또 부르냐

2006-08-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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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우리 보다 50년의 이민역사가 앞선 유대민족은 1948년도 ‘울판’이라는 단체에서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자국의 해외국민 600만명을 상대로 모국에 관한 뿌리교육을 시작했다. 울판은 해외동포재단 같은 반관반민 형태로 지금의 우리로 말하면 뿌리교육재단 같은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을 통해 유대민족은 한마음 한뜻으로 자녀들에게 정체성 심어주기에 열중하고 있다.

건국당시 이스라엘의 해외민족은 국내에 살고 있는 숫자보다 더 많았다. 이들은 해외거주 자국민 600만명을 차례로 본국에 불러들여 모국의 역사, 문화, 예절, 전통 등을 가르쳐 조국에 대한 뿌리와 얼, 정신을 심어주었다.
이스라엘은 5,000년간 이집트로부터 핍박받고 쫓겨난 후 고생고생하며 광야생활을 40년간 하다 나라를 건국했으나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말살되다 시피한 나라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세계강국으로 그 위치가 바뀌었다. 그들에게는 나라 없는 국민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슴 밑
바닥에 늘 뿌리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자신감과 자긍심은 어느 민족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뚜렷했다.


유대인의 경우 집에 화재가 났을 때 무얼 먼저 갖고 가겠느냐 물으면 다른 것은 그만두고 머리, 즉 두뇌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또 학교에 가는 자녀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학교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오너라” 하는데 반해 유대인들은 “질문
을 많이 하고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공부를 해도 능률 있게 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우리 한인들은 무조건 암기해서 외우는 방법을 요구한다. 그래서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 결과 유대인은 우리 보다 역사가 짧지만 경제적이나 정치적 파워는 50대1이다. 이제까지 노벨
상 수상자만 봐도 그들은 51명이나 되고 현재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도 보면 거의가 유대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때문에 히틀러에 그만큼 처참하게 당했어도 미국을 지배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코리언이다’ 하면 많은 1.5세나 2세들이 부끄럽게 생각해 ‘일본인이다’ ‘중국인이다’ 거짓말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태어났어도 미국인은 될 수 없다. 무엇을 해도 피는 속일 수 없는 코리언이다. 이런 정체성을 알고 크는 것과 아
닌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당당하지만 모르고 크는 아이는 흔들리게 되어 있다.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실제로 정체성 문제는 졸업 후 취직하는 관문에서도 적용돼 한국말을 못한다면 뿌리가
없는 사람이라며 떨어뜨리는 예도 있다.

뉴욕에는 ‘유나이티드 주이시 훼더럴 파운데이션’이라는 유대인단체가 있다. 현재 이 기관은 4,000만 달러의 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50년 전 시작 때는 고국에 가니까 이렇게 해주더라 하면서 부모가 고맙다고 기부하고 이 소식을 친척이 듣고 나서 고맙다고 돈을 보내 이만큼 모아졌다. 이들은 애국심과 정체성을 2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그 돈으로 조국을 방문케 해 뿌리교육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갔다 온 아이들이 훗날 CEO, 고위층이 되고 나서는 또 더 많은 돈을 내놓는다. 지금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모두 비행기 그냥 타고 조국에 가 발전상을 보고 재충전시켜 돌아와 모두가 뿌듯함을 안고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갖다 와서 고맙다고 다음 사람을 위해 도네이션 하는 사람이 몇 명도 안 된다고 한다. 오히려 다녀온 후 품평회를 위해 부모 자녀 다 부르면 “다녀왔으면 그만이지 왜 또 부르냐” 면서 아주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기가 일쑤라고 한다. 다녀온 아이들끼리 서로 만나게 해주고 결속을 다짐으로써 친선도모와 정보 교환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도 대단히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인색하고 근시안적일까 답답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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