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교 동창회

2006-07-29 (토)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한양(서울)에다 도읍지 터를 잡은 무학대사는 남산을 가리켜 용이 누운 형세라 해서 남산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용산이라고 불렀고, 왜정 치하 때 주로 한국에서 살던 일본인 무관의 아이들을 위하여 개교하면서 학교의 이름을 용산·중고등학교라 했다. 학교 나이 60이니 어느새 환갑이 다 된 그런 용산 중·고등학교가 개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기념식과 동창회를 뉴욕에서 연다. 개교 기념식과 동창회, 그런 기념식을 해외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동창!’ 그립다. 생각하니 그립고, 말을 할까하니 더욱 그립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추억인데 그 많은 추억 가운데에서도 고교시절의 추억은 누구나 생각할수록 그립고 만질수록 감촉이 아련하다. 하루를 졸업하고 산을 넘는 저녁 해가 왔던 길을 아쉽게 뒤돌아 보다가 여기저기 조금씩 파진 웅덩이나, 길게 뻗은 도시의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층건물 유리창에 조금씩 떨구고 가는 한숨의 노을처럼 고교시절의 추억은 아름다워 슬프기도 하고 가슴을 아련하게도 따스하게도 만든다.


뱃고동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경제의 도시 항구 뉴욕으로 경적을 울리며 모일 고교 동창들, 현재의 교장선생님도, 몇 분의 은사님도, 정희영 모국의 총동창회장도,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동문도 뉴욕에서 열리는 총동창회의 개막 날짜를 기다리면서 선잠을 품고 뒤척일 것이다. 왜 그럴까? 선배, 후배, 동기, 가슴 앞에 달고 다니던 이름을 보면 그의 아버지의 염원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되는 이름들, 그 동창의 이름들이 숫자로는 수만이 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실인즉 이름은 하나다. 즉 ‘동창’.

고교 동창이 좋은 것은 철이 들어가는 십대의 나이를 향하여 지독하게 불어닥치던 순수하고 순진한 고뇌를 주고받은 우정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또한 인생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까?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서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고, 또한 먼 훗날 나는 무엇이 되어있을 것인가?
남산 어디엔가 바위 밑에 숨어서 시작한 물줄기가 환한 얼굴을 내보이며 수도여고 정문 앞을 지나 전차가 지나가는 큰길을 향하여 똑바로 내려가는 남영천 길가, 아직은 익지 않은 순녹색의 열매였지만 개천 따라 왼쪽 가를 점령하고 한 줄로 뻗어 걸어가는 여학생과 짝을 지어 걸어가듯 바른쪽을 점령하고 등교하던 시절, 사춘기를 안고 가던 그 때의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어도 등교길은 조용하기만 했다.

나는 월간으로 나오는 학교신문을 시작하고 일년에 한 번씩 발행되는 교재 ‘용담’에 실을 원고를 모집하며 교정도 보고 편집도 하면서 바쁘게 지낸 탓으로 고뇌라는 그 때의 사치를 다 놓쳐버렸다. 후회되는 일은 없지만 아쉽다.동창을 만나거나 생각할 때 우리는 직업을 따지지 않는다. 동창에게는 위, 아래는 있어도 높고 낮음이 없다. 다만 옛날의 내용만 있고 그 내용 속에는 아름다움만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고교 동창생이다.

뿐이랴! 미래를 향하여 줄기차게 뻗으며 자꾸만 부풀어오르던 고교시절, 목적이 얼마나 먼지 짐작도 못하면서, 가야한다고, 아니 달려야 한다고 점심이 든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모두 힘을 냈었다. 신기하지 않은가? 조상 대대로 한번도 인연이 없던 우리가 용산이란 이름 아래 모여 동창이 되고, 만나면 웃다가 헤어질 때면 따스한 손을 잡고 섭섭한 아쉬움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는 사이가 신기하지 않은가!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전망보다는 꿈을, 불행 보다는 행복을, 서글픔 보다는 기쁨을 더 많이 깔며, 하면 된다는 패기 하나를 괭이 삼아 어깨에 메고 먼 불빛 하나를 보며 한 길로 가던 동창들, 어느 동창은 허락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 그들 앞에 울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어느 동창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소식이 없어 그리워하기도 한다.학교를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동창이 보이지 않고 동창을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은 없다. 학교를 후원하지 않는 자에게는 동창의 연줄이 삭는다. 미국의 저명한 학교의 후원은 그 학교를 나온 졸업생의 후원금으로 학교의 발전을 향상시키고 동창의 연줄을 굵게 만든
다. 나 하나로는 동창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학교와 동창회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될까? 기쁨 속에서 깨달아야 할 우리의 과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