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웅사관에 치우친 박정희 평가

2006-07-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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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한국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는 오늘의 한국 정치 양극화를 가르는 칼날이 되고 있다.그를 추앙하느냐, 또는 부정적으로 비판하느냐 하는 입장의 차이는 그 사람의 정치적 견해와 신념을 읽을 수 있는 거울로 되고 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얼마 안된 낙후한 반봉건 농업국을 빠른 시일 안에 공업화 시키고 나라를 근대화·자본주의화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켜 누대에 걸친 가난을 극복하고 한국을 오늘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초석을 닦아놓은 걸출한 지도자로 보는 입장이 그 한쪽이다.그런가 하면 혈서를 쓰고 일본군에 자원하여 장교로 임관된 후 만주에서 항일 독립군의 토벌에도 참가한 친일 반역자이며 4.19로 쟁취한 민주·정통 정부를 총칼로 뒤엎고 통일을 열망하는 민족주의 통일 추구 세력을 탄압·말살한 독재자라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세게 비판한다.


박정희 비판자들은 경제성장을 주도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부지런한 우리 근로자, 농민들의 기여와 희생은 의도적으로 왜곡, 은폐, 축소되었다고 주장한다.이들은 민족 자주와 통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른바 민주·민족세력으로 일컬어지고 있고 그를 추앙하는 세력은 박정권을 이끈 당시의 엘리트 관료, 권력의 협력 아래 크게 성장한 기업인, 사업가, 그리고 개발 이익으로 부자가 된 지주 등 압축 성장시기 혜택을 누린 기득권 계층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 웬만큼 먹고 살게 된 광범한 서민 대중들도 그를 가난에서 구해준 영웅으로 숭앙하며 박정희 저지의 기득권 세력에 합류함으로써 지금 한국에서 야당을 이끌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그의 딸이 다음 대통령을 바라볼 수 있는 정치적 기반으로 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반박(反朴) 세력은 상대를 수구·냉전세력으로 기득권만 챙기려는 반민족·반통일, 외세 추종의 사대세력이라고 매도하고 있고 친박(親朴) 세력은 상대를 친북·반미의 시대 역행적 편협한 민족주의자이고 한물 간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빨갱이라고 욕한다.

박정희 비판 세력은 경제대국이 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이제는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고 외세가 강요해온 동족 대결의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통일의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박정희 지지 세력은 글로벌시대 한·미 동맹을 다지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며 아직도 1인 지배하 고립된 폐쇄적 북한정권을 미국의 힘을 빌어 압박·붕괴시켜 기아 속에 허덕이는 북한동포들을 구해야 한다고 외친다.이상 상반되는 견해와 주장은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의 비타협적 배타성으로 인해 설득과 포용 대신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가장 큰 논거인 가난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론. 조국 근대화의 기수론에 대해 근대화·공업화에 몸바쳐 기여한 이름 없는 광범한 근로민중들의 공헌과 역할은 지금껏 지나치게 무시되고 정치적 의도 아래 축소·은폐되었다는 학계·언론계·사회계 일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최근 새삼 부활된 그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민중을 제쳐두고 영웅인물만이 역사무대에서 주역이고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영웅사관에 그 인식론적 근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면 영웅 호걸들만 종횡무진, 대활약을 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 봉사하는 병사·민초들의 역할은 막 뒤에 가려져 명색도 흔적도 없다.지금은 제왕장상의 시대가 아니고 백성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시대. 개발 독재시기 공업화를 위해 강요된 저곡가 정책에 희생된 농민대중, 도시 빈민들의 기아임금, YH 여공들의 애사가 보여준 농촌여성들의 희생적 저임금,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의 눈물을 대신한 전태일의 분신, 서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땀과 눈물, 열사의 중동땅에서 외화를 벌기 위해 우리 근로자들이 흘린 땀방울, 이런 것들이 강력한 지도자의 통치 아래 모아지고 뭉쳐져 빛나는 성과를 이룬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평가로 될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겠다는 우리 근로자들의 염원과 애국 열정이 있고 부지런한 우리의 민족성, 높은 교육수준, 이런 바탕과 조건에서 영명한 민주적 지도자가 나와 똑똑하게 나라를 이끈다면 한국은 도약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성 아래 놓여 있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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