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에서 맞는 아이로 자란다는 것은

2006-07-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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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뉴욕가정상담소 칠드런 카운셀러)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많은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 가장 곤혹스럽고 아이의 정신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폭력이다. 한국문화는 아주 오랫동안 매를 드는 것을 아이들 교육의 필요조건으로 생각해 왔다. 비록 최근에는 이러한 생각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아이가 잘못을 하면 얼마든지 부모로서 매를 들어 아이를 때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러한 생각에 변화를 요구한다.

8살인 진호(가명)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서 학교선생님으로부터 상담을 권유받은 아이이다. 진호는 똑똑하고 창의적인 아이인 반면, 학교에서 규칙을 잘 따르지 않고 욕을 하고 화가 나면 책상을 치고, 다른 아이와 논쟁을 할 때, 좌절하거나 하면 상대방을 때리기도 했다. 아이와의 몇 개월간 상담을 통해 아이가 집에서 자신이 친구들에게 하듯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못을 하면 즉각적으로 비난당했고, 학교에서 소란이라도 피워서 학교선생님에게 주의라도 받으면 아빠에게 맞기도 했다.


한 번, 아이가 아빠에게 험한 말을 듣고 난 직후 울면서 상담실에 들어왔을 때 아이의 기분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아빠를 죽이고 싶다면서 더 서럽게 울었다. 이제 8살, 도대체 무엇이 아이의 마음속에 순간이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일까?위의 케이스만 보면 모든 게 다 진호 부모의 잘못이고, 부모가 아이 훈육을 잘 못해서 아이가 공격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모두가 다 그들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진호 부모님이 간과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진호의 부모를 포함해 많은 수의 취학아동을 둔 부모들은 비록 아이가 미국에서 자라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아이를 한국식으로 키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방식 그대로 이곳에서 아이를 훈육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랑의 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 훈육방식이 이곳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방식인 것을 깊이 인지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어떤 아이와 치고 받고 싸워서 선생님에게 혼이 나서 집에 돌아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화가 났지만 말로 해결해 보려고 시도를 했다. 아이가 생각만큼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자 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엉덩이를 자로 몇 대 때렸고, 아이의 엉덩이가 조금 빨갛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며 미안한 마음도 살짝 생겼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아이는 그 다음날 학교에 갔다. 아이의 미국친구는 똑같이 말썽을 부렸지만 부모에게 맞지는 않았다는 것을 아이가 알았고, 자기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희미한 빨간 줄들과 한 가지 의문이 머리 속에 생겨났다. “왜 나는?”

미국이라는 또 다른 문화 안에서 매를 맞는다는 것은 한국에서 매를 맞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한국인 10명중의 7-8명은 매를 드는 체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미국인들은 겨우 2-3명 정도만이 이 체벌을 이해할 것이다. 다수가 이해하고 함께 경험하는 훈육 방식은 아이들도 받아들이기가 비교적 쉽고 동지애도 느낄 수 있지만, 비록 그것이 잘못된 훈육 방식이라 할지라도 자기만 ,혹은 극소수의 아이들만이 경험하는 훈육 방식은 그것의 효과를 떠나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다.

이민자들은 누구나 이 낯선 땅에서 힘이 든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고 음식도 다르며 제도도 다르다. 모든 일에 적응이 필요하다. 어른이 그런데 하물며 아이가 힘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이들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능력이 어른의 그것에 미치
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몸으로 얘기한다. 과도하게 활발해지기도 하고, 심하게 우울해하기도 하고, 유난히 말을 안 듣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좌절과 힘든 상황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아이도 새로운 문화에 적응을 해 나간다. 그런 아이에게 ‘사랑의 매’는 너무 과한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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