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정과잉이 만들어낸 마마보이

2006-07-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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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옛 말에 제 마누라와 자식을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이라 했다. 이 속담은 역설적으로 제 자식을 남 앞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 많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나이 든 여인네들 모임에서 손자 자랑을 하려면 돈을 내놓고 한다는 신시대 풍속까지 생겼다고 하니, 가히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판 할머니다운 처세방식이라 할 것이다.
내 피와 살을 물려준 피붙이, 죽은 다음에도 대대로 이어갈 혈육,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연속성의 원리를 생각하면 ‘내리사랑’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내리사랑은 남 앞에서의 자랑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싶은 게 어른의 마음이다. 더구나 집집마다 아이가 한 둘 밖에 없는 핵가족 구조에 있어서랴. 그러나 요구하면 다 해결해 주고 사달라면 모두 사주는 어른의 태도는 아이들의 자생력을 저해하
고 돈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는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 때 봉착하는 문제들을 엄마나 아빠가 따라 다니며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리의 자식사랑 방식에 잘못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이기적이고, 어른을 곤경할 줄 모르고,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협과 조화를 모르고, 덩치는 컸어도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아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고치려는 용기와 의지
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아이들을 만든 건 어른이다. 하나 뿐인 아이가 귀여워서, 밖에 나가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직 어려서 보호를 받아야 하니까, 장차 철이 들면 나아질 테니까…, 적절한 핑계거리까
지 마음 속에 준비해 가면서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를 반 푼이 만들기에 열심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무조건 사랑하지는 않는다. 사자는 어린 놈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생존 훈련을 시키고, 부엉이도 새끼가 날 때가 되면 먹이를 날라다 주지 않는다. 이것이 우주의 생명 법칙이요,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다.한 가정에서 자식을 제대로 기르려면 부성원리(父性原理)와 모성원리(母性原理)가 알맞게 균형을 이루었을 때 가능하다. 이제 부성원리는 자취를 감추고 모성원리만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잘 못해도 꾸짖는 사람이 없고, 내 새끼는 무조건 잘났고 귀엽다는 ‘애정과잉 증세’에 병
들어 있음이다. 사랑도 ‘지나치면 눈이 멀고 병이 된다’는 이치를 어른들이 깨쳐야 한다.

가족심리학의 권위자 리스박사는 ‘아버지가 없는 현상’이 자녀 교육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극소화하려면 가정에 또 하나의 아버지인 ‘환상 부친(幻想 父親)’을 모셔 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아이가 뭔가를 사 달라고 칭얼대면 ‘아빠에게 물어 봐서 허락하시면…’ 한다든가, ‘아빠에게 말해서 혼내 줄 테다’라는 등 가공의 아버지를 설정해서 부성원리를 대행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정교육 지침인 내훈(內訓)에서도 집안에는 누군가 무서운 사람 하나를 꼭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후레자식’이란 말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배운데 없이 제풀로 자라 인사도 안 하고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가리켜 어른들이 하는 욕설이요, 꾸지람이었다. 이 낱말의 이면에는 ‘아비 없이 자란 후레자식’이란 감춰진 뜻이 담겨 있다. 요즈음은 ‘마마보이’가 ‘후레자식’의 자리를 대 물림 받은 형국이다.여권신장과 더불어 무력화 된 아빠의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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