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어둠속의 불꽃

2006-07-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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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호(취재1부 기자)

18일 저녁부터 퀸즈 북부를 강타한 정전사태로 상당수 한인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전력공급이 집중적으로 차단된 서니사이드, 우드사이드, 아스토리아 등 퀸즈 북부에는 한인주민 및 업소들이 밀집해 있어 피해지역 내 한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취재를 위해 피해지역을 찾았을 때 어둠속에서 생활하고, 또 영업하고 있는 한인들이 무더위와 함께 자신들의 속도 타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산한 길거리와 문을 아예 닫아 버린 업소들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소 문은 열었지만 영업을 할 수 없어 가게 밖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한인들과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계속 얼음을 사다 나르며 영업하는 업주들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한 가게 앞에 모여 ‘어제 저녁 너무 더워 잠을 못 이뤘고 아이는 더위를 먹었다’, ‘내일은 다른 집으로 대피해야지’, ‘세수도 못했다’, ‘옆집 아저씨는 엘리베이터에 갇혀 질식사할 뻔 했다더라’등의 대화를 나누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에 살면서, 특히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는 여름이면 정전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전 사태는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그런 정전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지난 2003년 미동부지역을 강타한 ‘정전대란’보다는 소규모 사태지만 어떻게 보면 피해는 더 심각하다.

2003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실시됐고 전력 공급은 빠르게 재개된 바 있다. 그러나 퀸즈 북부 정전 사태는 콘에디슨사가 제대로 조사도 하지도 않은 채 2,000가구만 전력이 끊겼다고 발표해 복구 작업을 더디게 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피해 가구는 2만5,000가구. 기존의 발표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뉴욕시 정부는 뒤늦게 전력복구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콘에디슨에게 촉구했고 피해 지원도 사태 발생, 4일만에야 시작됐다. 전력이 끊긴지 8일째를 맞는 현재까지 전력 정상화가 되지 않은 것도 콘에디슨의 책임없는 발표의 부산물로 볼 수 있다.

대형 기업들의 이같은 횡포는 한두번 봐오는 일이 아니다. 허나 현재로서 뉴욕시내 주요 정치인들이 콘에디슨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번은 쉽게 넘어갈 여지가 없어 보인다. 또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가 피해 지역을 ‘재난 구역’으로 선포할 경우 연방보조도 받을 수 있게 돼 피해주민이 조금이라도 심적, 금전적 위안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 기간동안 주민들이 얻게된 배신감과 상실감 등의 상처는 오랜 기간 마음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대형 자연재해에는 못미치겠지만 피해 주민들이 얻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지금 이들에게 따듯한 격려 한마디와 지원이 필요할 때다. 한인사회가 던진 말 한마디와 도움이 이들을 어둠속에서 이끌어주는 희망의 빛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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