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캄캄한 방에 촛불을 밝히니

2006-07-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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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뉴욕 써니사이드에 사는 관계로 며칠 동안 전기 없이 촛불을 켜놓고 생활을 해야만 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전기가 나가 들어오지 않으니 답답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것 또한 좋은 공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캄캄한 방에 촛불을 밝히니 그 촛불 하나에 온 어둠이 사라지는 듯하다. 문명이전의 생활로 잠깐 돌아간 듯 착각이 된다.

전기 없이 지내보니, 전기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지난 번 몽골에 갔을 때 게르(천막집)에 사는 몽골 원주민 유목민들의 전기 없는 생활상이 바로 문명이전의 삶으로, 그들이 얼마나 불편하게 살아갈까 새삼 생각되어진다. 그래도 그들은 아예 전기 없는 생활을
하여 익숙해져 그런대로 불편을 못느낄 수도 있을 게다.
전기가 나감에 따라온 불편함을 나열해 보자.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니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한다. 1층에 사는 사람들이야 별 일 아니다. 그러나 높은 층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이 없겠다. 층계 계단을 오르내릴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두우니 발을 헛디뎌 굴러 넘어질 수도 있기에 그렇다.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으니 냉장고 내 냉동고에 들어있던 고기종류가 모두 상했다. 또 냉장고 내에 들어있는 모든 음식들이 상했다. 첫 날은 그런대로 상하지 않고 괜찮았는데 며칠 지나니 음식도 식품도 더운 온도에는 당할 재간이 없나 보다. 보온밥통에 들어 있던 밥은 쉬어 모두 버려야 했다. 에어컨디션이 돌아가지 않아 더우니 모두 해변 가도 아닌데, 해변 가 차림으로 밤을 지내야 했다. 해변 가 차림이라도 왜 그리 땀은 나는지. 끈적끈적한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몇 날을 지내야 했다. 불쾌지수 100을 넘는다. 막내딸은 화장실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몸을 적셨다 나왔다 반복하며 몸을 식히며 지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찬 물에 샤워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 처음 샤워 물을 틀었을 때는 찬 기운에 놀라나 조금 지나니 찬물도 견딜 만 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것, “이 참에 아주 냉수욕으로 바꾸어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노인들은 찬물에 샤워를 하지 못하니 목욕을 못했을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물이 나온 것이다. 전기도 나가고 물까지 안 나왔다면 그 보다 더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 보일러에 전기가 연결 안 되어 뜨거운 물은 안 나왔어도 찬물이라도 시원하
게 나와 주어 설거지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개스가 나와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어 괜찮았다. 전기로 음식을 해 먹는 사람들은 라면도 못 끓여 먹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다. 텔레비전 시청뿐만 아니라 전화도 걸 수 없고 받을 수 없다. 다행으로 나의 핸드폰은 직장에 나와 충전을 시켜 그것 하나로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일반 전화는 두절 상태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지 못했다. 또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청소 할 수 없으니 집안 청소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번 정전사태로 손해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일반 가정이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이 쉬거나 상해, 버려 버리면 되지만 식품점을 운영하거나 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사람들, 즉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콘 에디슨 사에서 일반가정은 350달러까지, 업소는 7,000달러까지 보상을 해준다 한다.

그러나 그 보상금을 받기위해 들여야 하는 수고와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그 보상금이 나올는지 피해당한 서민들만 답답할 뿐이다. 뉴욕시장이 정전된 곳을 찾아다니며 서민들의 고충을 위로하고는 있으나 얼마나 위로가 될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살면, 정전사태가 발생했어도 금방 복구되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번 정전 사태에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한 빌딩 내에서도 전기가 공급되는 방이 있는가 하면 전기가 공급 안 되는 방이 있다. 써니사이드 한 동네에서도 전기가 이상 없는 빌딩이 있고 정전된 빌딩이 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도 만에 하나 콘 에디슨사의 장난이나 빌딩 슈퍼의 장난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문명국이라 자처하는 미국내 뉴욕시에서 일어난 정전사태 속에서 문명이전의 삶을 몇 날 동안 누려본 소감은 그저 씁쓸하다. 그래도 “남들이 하지 못한 체험을 했으니 이것도 공부구나” 하는 생각이 앞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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