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은 불안한 경제동물이다

2006-07-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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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로(플러싱)

본래 인간은 불안한 경제동물이다. 그리고 어느날 가고 없는데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가 자리한다. 인간은 불안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먹고 싶어 먹은 나이가 아니고, 더더욱 경제활동을 하기 싫어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됨인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야속하고도 서글프다는 생각이다.

나는 요즘 집에 있으면서 종교적 차원을 넘어 ‘나는 도대체 어떠한 존재인가. 또 무엇 때문에 살며,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두고 우울증에 걸려 있다. 짜증도 많아졌고 화냄의 횟수도 잦아졌다.
경제활동이란 또다른 의미의 표현은 무한의 경쟁사회에서 숨가쁜 경주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유아독존식 인간 삶의 존재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물의 생산수단에서도 사회 구성원 중 누구는 기획과 계획을 수립하고 결정하며 실행하는 사람(사용인·사업가)과 그에 따라 실행에 필요한 사람(고용자·노동자)으로 구분된다.


이런 관계의 고용자(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해 고용되어야 하지만 항상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했다 해도 장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한편 사용자(사업가)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용자 역시 장래에 대한 확고부동한 보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고용자보다 사용자가 더 위험부담을 안고있는 것이다.
물론 용기와 모험 없이 성공은 없다지만 자본을 투자하기까지와 어렵게 생산된 제품이 상품화 되고, 시장에서 만족할만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격으로 화폐(돈)와 교환할 수 있을런 지도 불안해 할 것이다. 또한 사회 전체의 경기흐름 상태나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를 경쟁상대의 출현 등도 불안의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기를 「무언가를 찾아 도전하는 것은 ‘초심자의 행운’이요, 그에 따르는 것은 ‘가혹한 시험’이며 그 결과는 섭리요 이치이며, 순리로서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라고.이렇듯 사용자와 고용자의 관계와 생산과정을 거쳐 상품화된 관계는 돈과 교환의 관계로 이어진다.이런 일련의 관계는 돈을 취함에 교환조건 관계로부터 일어난다 할 것이다.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저속한 말과 인간의 가치를 극멸하게 표현된 말, “지나는 개도 쳐다보지 않은 것”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다” 등으로, 그리고 돈은 모든 사물을 비롯 노동력이나 양심, 심지어 정조까지도 지배하는 것 아닌가.결국 개도 물어가지 않은 것의 힘으로 특권을 가지고 지상낙원을 누리는 형세로 발전된 셈이다. 하여 자본주의의 병폐인 물질만능 세속에 국한지어 “가난한 자여 복이 있나니”를 “가난한 자여, 저주받은 자니라”로 인용해 본다.

오늘의 사회상으로 볼 때 당연하고도 진리로 받아짐도 무리는 아닌가 싶다. 이런 면의 또 다른 것은 종교생활도 떳떳치 못하며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쓰라린 고통을 그들이 어찌 알까 보냐다.그리고 나라고 해서 삶에 욕심이 없겠는가만 선진국일수록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추세다. 이도 따지고 보면 인간도 순환관계의 본연은 경제동물로서 자연력에 위배되는 것 아니겠는가.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와 경제활동 부문과 국가재정상의 관계에서도 부담이 될 뿐, 도움이 안
된다. 더구나 돈과 교환의 가치가 없거나 소유함도 없는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대자연 속에 하나의 매개물이며 자연물로서 순환적이고 살기 위해 경제활동을 안할 수도 없으며 돈과 교환하기 위해 수고하고 그러는 가운데 불안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정말 불안한 존재의 순환적 경제동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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