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나기

2006-07-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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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소나기 한 줄기 내리면 오죽 좋을까. 폭염이 계속될 때 생각나는 반가운 비는 소낙비라고도 하지만 소나기의 어감이 더 좋다. 또한 한자어로는 ‘백우’ 또는 ‘취우’라는 이름이 있다. 지루한 장마와 달리 때로는 기다려지기조차 하는 소나기는 여름철에 가끔 만나는 청량제이다.

여기에 관련되는 말 중에 소나기밥, 소나기술이라는 것도 있다. 소나기밥이나 소나기술은 여느 때는 조금 먹거나 마시다가, 어떤 때는 놀랄 만큼 많이 먹거나 마시는 일을 가리킨다. 그러니 건강 관리 상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학생의 경우는 소나기 공부도 있을 것 같지만 이런 말은 없고, 갑자기 서둘러하는 것을 벼락공부라고 한다.
소나기를 생각할 때 연상하는 것은 그 내용이 전원적이며, 향토적인 소년 소녀의 애잔한 순정 단편소설 ‘소나기’이다. 널리 읽힌 이 소설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학교에 다니는 길에는 개울이 있고, 거기에는 징검다리가 있다. 서울에서 온 소녀가 거기 앉아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시골의 순진한 소년은 개울가에 서서 비켜주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소녀가 조약돌을 던지며 ‘이 바보!’라고 소리치고 달아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소년 소녀가 점점 우정을 쌓으며 지내던 어느 날 들놀이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들은 수숫단을 세워 그 속에서 소나기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다가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넌다.그 후 몇 날이 지나서야 소나기를 맞고 앓은 소녀가 소년에게 대추 한 줄을 주면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다시 소녀를 만나지 못하는 소년은 소녀에게 줄 호두알을 만지작거리고... 그러다가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간추려 보았지만 몇 번 읽어도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곳 학생들이 읽으면 어떻게 느낄 것인지 궁금하였다. 학생들은 ‘소나기’를 번역하느라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작품의 정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몇 학생은 소녀가 죽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이 학생들은 작품을 마음으로 읽지 않고 표면의 글자를 읽은 것 같다. 그들이 체험하지 못한 이야기가 되어서 상황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1952년 작품이 되어서 더욱 그런 지도 모른다.

한국의 마음을 알린다는 것은 알게 하는 것을 넘어서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실용문을 읽으면 그 내용을 실생활에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느낌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읽고 나서 얕게 깊게, 연하게 진하게 마음에 남아도는 여운을 말한다.
이런 정서는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체험을 통하여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정서 함양의 좋은 자료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하겠다. 거기서 삶의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느끼면서 독서를 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가. 또 유익하고.학생들이 방학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로 한국 동화나 아동문학작품이나 단편소설 읽기를 바란다. 그 방법으로 한 작품을 여러 차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가지면서 작품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독서를 즐기려면 재미있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이야기 줄거리에 빠져들면서 책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요즈음은 한국서적도 풍부하다. 자녀와 함께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하는 일은 부모들의 일이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책을 읽어도 좋고, 그들이 읽은 다음에 가족이 함께 읽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도 좋겠다. 책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느낌을 써놓으면 성장기록이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한국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오솔길이지만 넓은 길에 통하는 성장 과정이다.

계속되는 된더위 속에 오아시스 격인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길 가던 사람들이 비를 피해 가게 안에 들어서서 빗줄기를 내다본다. 그러나 모두의 표정은 밝다. 소나기의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서 잠깐 황순원의 소나기 주연 소년 소녀를 생각한다. 그들도 지금 이 소나기를 피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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