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은 神이 아니다

2006-07-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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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이 지금의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중부를 거쳐 팔레스타인 땅에 처음 정착한 것은 아브라함 때이다. 그런데 3대째인 야곱 때 이 땅을 버리고 이집트로 이주했다가 그 곳에서 박해를 받게 되자 모세의 지도로 ‘출애굽’을 한다. 그 후 팔레스타인 땅에 다시 돌아가 오랜 기간에 걸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싸운 끝에 땅을 다시 빼앗아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또 한번 이 땅을 버리고 떠난다. 로마의 지배에 항거했다가 예루살렘이 초토화되자 유대인들은 고향을 등지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이른바 디아스포라라는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세계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말할 수 없는 박해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19세기부터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시온주의 운동이 벌어진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이후 이런 소망이 더욱 간절해져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영국의 후원으로 제 2의 가나안 정복이 실현되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정복해가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얼마나 심한 싸움을 했는지는 구약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여호수아와 사울,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을 승리로 이끈 전쟁 지도자들이다. 이 첫번째 가나안 정복과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이스라엘이 건국
된 후 유대인들은 이 지역에 2000년 동안 거주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는 전쟁을 계속해 왔다. 이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뿐 아니라 전 아랍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므로 참으로 힘겨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국토로 따지면 한국의 강원도만한 작은 나라이다. 인구는 600만 정도밖에 안되니 서울 인구의 절반 정도이다. 그런 나라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무자비하게 박살내고 2억 인구의 아랍세계와 몇 차레 전면전을 벌이면서 자기네 땅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힘은 스스로의 힘이라기 보다는 세계 초강국인 미국의 힘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의 가나안 정복은 여호와의 힘으로 이루어졌지만 현대의 가나안 정복은 미국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유일신의 종교사상으로 선민의식이 굳어진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이후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박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 세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처럼 유대인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돈만 아는 구두쇠로 오래동안 각인되어 왔다. 지금도 유대인 건물주를 상대해 본 사람이라면 유대인들이 얼마나 돈에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몹시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유대인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에 있는 유대인은 약 600만 정도로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이 미국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고 경제 뿐 아니라 학계, 예술계, 언론계, 법조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여 정치적 영향력도 대단히 큰데 최근에는 유대인들의 정
계 진출이 타민족에 비해 급성장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3% 밖에 안되는 소수의 사람이 미국이라는 회사의 주식을 거의 모두 소유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다.
그러니 미국이 유대인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미국이 모든 아랍국가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편을 들기 때문이다. 이라크를 꺾어놓은 것도, 이란을 몰아부치는 것도, 시리아를 겨냥하는 것도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유엔에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행동에 대한 비난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해도 미국만은 반대표를 던진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편들 수 있을까 할 정도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결국 9.11 테러를 당하고 말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들어 아랍세계에 적대적이 아니었다면 그런 테러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랍 테러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면서 이란이 미국 본토에 테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의 무장단체인 하즈볼라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취하면서 하즈볼라가 미국내 테러를 계획했다는 첩보가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의 분쟁이 세계 3차대전을 유발할 수 있는 화약고라고 하는데 만약 3차대전이 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 때문에 아랍세계와 그 동맹세력을 상대로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미국은 신이 아니다. 유대인의 가나안 정복을 도운 여호와처럼 이스라엘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미국의 고립을 자초할 뿐이며 결국 미국의 쇠퇴를 재촉할 뿐이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그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맡기고 미국은 미국을 위한 미국의 길을 가야만 한다. 중동사태의 악화를 보면서 미국의 각성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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