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시월애(時越愛)

2006-05-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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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지난 주말 어머니날에 결혼한 아들 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아 섭섭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다. 지난해 결혼해서 한국에 잠시 나가 있는 아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오지 않아 첫 날은 사업이 바빠져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이틀째도 전화가 없어 첫 애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서운했고 밤늦게까지 혹시나 하고 전화 벨소리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셋째날도 전화가 없어 정말 화가 났고 애꿎은 며느리까지 밉더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서울로부터 셀룰라 폰 벨이 울리더라는 것이다. 며느리가 며칠 동안 전화를 했는데 받는 사람이 없어 이상해서 핸드폰으로 전화한다는 내용이다. 어머니날 인사를 받고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정말 집 전화가 불통이었다. 잠시라도 아들 내외를 오해했던 것이 미안했다고 친구는 멋쩍어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시간차’ 문제였을 뿐이니까.

2000년에 개봉됐던 이현승 감독의 한국영화 ‘시월애(時越愛)’가 저작권 사용료를 받고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제작되어서 6월 세계 각국에서 개봉된다고 한다. 원작은 이정재, 전지연이 주연한 러브 판타지로 한 편의 그림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미국의 워너브라더스 영화사가 샌드라 블록, 키아누 리브스 등 정상급 배우를 주연으로 다시 제작하고 있는데 동양적 멜로를 어떻게 표현할 지 자못 궁금하다.
이 영화는 신비한 시간차 사랑으로 1997년의 남자와 1999년의 여자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워간다는 러브 판타지이다. 그들은 과연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모처럼 남의 사랑이 가슴 조이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영화보다도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데일리 텔레그라프 보도에 지난 12일 영국 런던 캠브리지 대학 역사학 교수였던 조지 그룬을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 한 통이 일반 우편물과 같이 평상시처럼 학교로 배달됐다고 한다. 이 편지는 1950년 3월 런던에 사는 그웬이라는 여인이 당시 연구원이었던 총각 그룬에게 발송한 것이었다. 자그마치 66년 만에 도착한 편지의 내용은 “다음 주말 오후 2시에 레스토랑에서 만나자”는 연애 편지였다. 그런데 수신인인 그룬 교수는 1993년 70세로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미망인은 결혼 전에 남편이 그웬이라는 여자를 사귀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호사가들은 반세기 만에 도착한 이 편지와 그 주인공들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하는데, 혹시 그 편지가 전달되지 않아 사랑이 깨어지고 ‘시간차의 오해’로 인해서 운명이 바뀐 것이 아닌지 조사 중이란다.

친구는 다행히 약간의 시간차이는 있었지만 서울에 있는 아들에 대한 오해가 풀려서 변함없는 모자지간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영화 시월애의 주인공들 역시 꼬인 시간차를 잘 극복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한 지붕 아래, 한 이불 속에 살면서도 오해를 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차도, 공간차도 없는데 변함없는 오해를 키워간다면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그야말로 미스터리 호로 판타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이웃에서 우리는 사소한 일로 과연 얼마나 많은 대립각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거두절미하는 사무적인 대화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는 않는지.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는 구실로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에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은지. 괴롭고 힘들어하는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의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고통에 혹시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가장 어리석고 슬픈 인간의 모습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시간차가 아닌가 한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그를 반길 부모가 안계시니 슬프다’는 옛 시조는 효도할 시기를 놓친 자식들이 공감하는 한탄의 시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한 번 더 노부모를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연인관계, 부부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녀, 친지 및 친구,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내일이 아니고 오늘 따뜻한 한 마디가 상대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다 알고 있다. 알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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