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썩어야 하는데

2005-07-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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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이제야 사람들이 오염되고 있는 자연환경을 걱정하고 파괴 되어가고 있는 지구를 걱정한다. 죄 지은 사람이 죄를 뉘우치듯 반성하는 소리가 높다. 그렇다. 우리 인간들은 자연 앞에 죄인이다.집 뒤뜰에 쭈그리고 앉아 무서울만치 키가 큰 나무와 보일 듯 말 듯한 산꽃, 때도 씻지 않은 검한 배를 내놓고 아무데나 누워서 잠을 자는 염치없는 바위를 바라보며 지구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은 간단히 나온다. 썩어야 한다. 썩을 줄 아는 것, 썩을 수 있는 것만을 생산해 내는 것이 자연이다. 화려한 꽃을 피운 후, 허리가 휘도록 무성한 잎을 휘날리는 나무들, 해마다 마지막쯤에 가서는 씨앗을 이 땅에 내려놓은 후 살만큼 살다가 결국에는 거부하지 않고 모두 다 기꺼이 썩어준다.

자연환경의 보호 방법을 알기 때문이고 자연은 그 책임을 철저하게 짊어지고 이 땅에서 시행한다. 하늘을 나르는 새도 드디어는 썩고, 소도, 말도, 삼겹살을 자랑하는 돼지도 죽어서는 다 썩는다. 바위도 먹기 싫은 세월을 한종지 두종지 먹으면 배부터 삭아서 모래가 되고 마침내는 흙으로 남는다. 살겠다고, 아니,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썩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내며 발버둥치던 사람들도 다 죽어서 다 썩는다.


자연환경을 장사속 때문에 망치던 인간들도 이것 하나만은 가상스럽게도 잘 지킨다. 자연에는 썩거나 삭아서 흙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썩어준다는 것은 우리들의 후손 만대가 살아갈 이 땅을, 아니 이 자연을 보전시켜 주는 길이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광물에는 모두 화학성의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콩 속에 제니스틴, 양배추의 인돌 3 카비놀, 녹차의 항산화 성분인 EGCG, 부로컬리의 설포라펜, 붉은 포도 껍질의 레스베라트롤, 생강에 진저롤, 토마토의 라이코펜... 등등. 이 화학성의 물질들을 인간이 강제 추출하여 다른 화학성분과 합성을 시키지 않는다면 본체와 함께 다 썩어준다.

자연환경의 보호 책임을 자연은 알고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임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디에서든지 화학 성분을 쉽게 추출하여 썩지 않는 물건까지도 만들어내는 주범이 되었다. 금방 썩지 않아야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고 더 오래 썩지 않아야 칭찬받는 고가의 상품이 된다. 썩지 않아야 인간에게 가장 편리한 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다.썩지 않는 비닐봉지 대신에 신문지에 군밤이나 고구마, 또는 생선까지도 둘둘 말아 들고오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지구는 울고 있다. 창조주는 노하고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려 가뜩이나 얼마 안되는 육지가 바다물 수위에 어처구니 없이 무릎을 꿇고 한치 두치 빼앗기고 있고 만년설에 뒤덮혀 긴 잠을 즐기고 있던 고산지대가 늑대의 사나운 이빨같은 신세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인간을 향하여 달려들듯 으르렁대고 있다.

천연의 모습은 무의미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지켜주는 것이 지구를 보존하는 길이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줌으로 해서 우리가 살 수 있는 터전이 지켜지는 것이다. 모두 그대로의 까닭이 있는 자연의 상태를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존엄성을 갖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진행 없는 결과는 없다. 유기농 식품들이 눈길을 끈다. 값도 엄청나게 비싸다. 유기농 식품들이 값으로는 더 싸야 할 터인데 오히려 더 비싸다. “구린 냄새, 썩은 냄새 맡으며 일을 한 값”이겠지... 나는 유기농 식품을 사면서 기특한 마음으로 내심 웃는다.

화학비료는 썩기를 거부해 흙을 죽이고, 퇴비는 기꺼이 썩으면서 흙을 살린다. 썩기를 거부하고 미이라가 된 사람의 형태는 죽엄의 흉칙한 모습을 두려움으로 보여주고 썩어서 이미 흙이 되었을 나의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가슴 속에서 키가 자라며 더 그리워진다. 썩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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