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관계 복원과 북핵문제

2005-07-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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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남북 장관급회담이 재개되어 적지않은 합의를 도출해 냈다. 1년여 동안 소강상태였던 남북관계인지라 이번 15차 장관급 회담은 재개 자체만으로도 대화복원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담 결과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성과를 도출했다.이번 15차 장관급 회담의 의미는 무엇보다 남북 당국간 대화가 공식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지난 6.15 민족공동행사에 남측 정부 대표단이 참석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남으로써 실질적인 당국간 대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남북 당국간 정례적인 최고 협의 채널은 여전히 장관급 회담인 만큼 이번 15차 회담 재개와 성공이 사실상 공식적이고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장관급 회담은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조건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에서 남북간에 협의해야 할 중요 사안들에 대해 폭넓은 의견 교환과 함께 일정한 합의를 이룬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남북대표가 합의한 내용도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장관과의 구두 합의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특히 북핵문제에 대해 김정일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가 아직 유효하고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면서 미국이 북한을 존중하고 인정하면 7월중에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남북은 과거보다 진전된 형태로 핵문제와 관련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일자를 명시하지 않은 점은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한 핵관련 내용을 감안할 때 이번 공동보도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밝히고 과거의 ‘상호 노력한다’는 정도에서 나아가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진전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그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갈등과 대결이 지속되면서 한반도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특히 지난 2.10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북미간 대결이 첨예해지면서 미국은 북핵문제의 안보리 상정 가능성을 거론하며 대북 제재를 가시화하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영변 원자로를 가동 중단하고 폐연료봉의 인출을 완료했다고 으름짱을 놓는 등 최악의 상황까지도 점쳐지는 위태한 국면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관심사인 북핵문제에 대해 남북이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한 것 외에 이번 장관급 회담은 그동안 중단되었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백두산에서 열기로 한 9월의 16차 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10차 경제협력 추진위 회담 및 3차 장성급 회담과 전쟁시기 행방불명자 논의를 위한 6차 적십자 회담 등의 일정이 합의된 것은 말 그대로 남북 당국간 대화가 구체적 일정표에 따라 복원되었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중단된 대화를 복원한 것 이외에도 이번 장관급 회담은 새로운 회담 채널을 구성하기도 했는 바, 농업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차관급의 남북 농업협력위원회와 서해상의 공동어로 등을 논의하기 위한 수산협력 실무협의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대화 틀을 넘어 새로운 협력
을 진전시키기 위한 협의 틀을 새로 구성한 것이다. 이미 합의한 사항들을 재확인하고 충실히 이행해 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합의를 이루어낸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또 이번 장관급 회담은 과거와 다른 생산적 토론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평양에서 이루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장관의 면담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서로 얼굴 붉히고 입씨름이나 하는 회담이 아니라 상대를 신뢰하고 존중하면서 실천가능한 합의들을 도출하는 정상적인 회담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도착 첫날 북측 대표가 호텔로 가는 길에 남측의 일부 인사가 반북시위를 벌였지만 북측이 항
의를 하면서도 회담 일정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분명 과거보다 유연한 태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번 회담장 형태가 과거와 달리 각진 회의 탁자가 아닌 원탁으로 배치한 것도 바뀐 회담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예정된 날짜에 공동보도문을 합의해낸 것도 새로운 회담문화로 손꼽힐만 하다. 항상 예정된 시간을 넘겨 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대기시키가며 옥신각신 진통을 겪었던 모습에 비하면 분명 변화된 모습이었다.그러나 문제는 장관급 회담의 성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이번 회담 이후가 더 중요하며 특히 북한이 반드시 7월중 6자회담 복귀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 다시 미국을 탓하면서 회담 복귀를 저버린다면 이번 15차 장관급 회담의 성공은 불완전한 성공일 것이고 결국 북미간 핵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면서 남북관계는 또다시 난관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간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의 계기가 북핵에 갇혀 제자리 걸음을 해서는 안된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의 재도약을 위해 남북이 지혜를 발휘하고 합의사항을 성실히 실천하는 노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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