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은 나의 조국

2005-06-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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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집을 떠나야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나라를 떠나면 고국의 그리움을 절감한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나는 일본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귀화한 것입니다. 내게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북조선이 아
니라 바로 나의 ‘가족’입니다”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수년 전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 가수의 말은 가족의 소중함을
한 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가정’과 ‘가족’-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낱말이다. 내가 낳고 자란 곳, 부모님이 언제나 곁에서 돌봐 주셨고 형제들과 오순도순 함께 지내던 생명의 보금자리, 그 곳, 그 분들을 어찌 꿈엔들 잊을 수 있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식솔간의 유대가 강하던 한국의 가정이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백년을 함께 살기로 맹세하고 새로 일군 가정들이 세 집 걸러 하나씩 깨지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하나의 가정이 허물어지는 것은 한 쌍의 남녀, 부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쇄적으로 많은 사람과 사회 전체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갈라서 자고 도장을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참지 못하고 양보할 줄 모르는 성정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 같
으면 ‘내가 참아야지’ 하고 지나칠 일들도 요즘 젊은 주부에겐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인권과 평등사상, 여권 신장과 교육기회의 증가는 더 이상 여성으로 하여금 인내를 미덕으로 삼지 않게 했다. 여기에다 이기심의 증가, 금전 만능주의, 성의 개방, 개인 지상주의 등이 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아무리 그렇더라도 가족과 가정은 마음과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가 아닌가. 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근원이며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의 보금자리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고 가꾸어야 할 곳이다.

“TV에서 이라크에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 내 몸이 찢기는 것처럼 괴로워요. 그렇게 싫어서 떠나온 고국이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요” 생활고와 후세인의 독재 때문에 이라크를 떠나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마지드씨의 이 목메인 소리에서, 우리는 화목한 가정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전통적 가부장제가 무너진 자리에 갑자기 불어닥친 서구식 개인 중심적 가족제도의 바람은 우리를 빈 들판으로 몰아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사이, 패륜 범죄와 가정폭력, 이혼의 급증과 노인 자살 증가, 학원 폭력과 파렴치범 난무가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자주적 존재다. 동시에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정체성을 떠나면 존재의 의미를 잃기 쉬운 ‘준거집단’이다. 그래서 지난 날의 전통과 뼈대를 중히 여기고 역사에서 배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바탕 없이 받아들인 외래적 가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어릿광대의 노리개 감일 뿐이다.21세기형 가정의 모델을 재정립해야 할 책임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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