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민군 군관과의 해후

2005-06-25 (토)
크게 작게
어수일(육군 예비역 소령)

6.25가 올해로 55주년을 맞는다.
세월이 아득하게 흘렀지만 나의 뇌리에 박힌 그 가증스러운 말 “야!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마쯔모드”는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당시 나는 10만여 포로를 수용하고 있는 거제도 유엔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경비연대 제 101 헌병대의 작전교육과장을 맡고 있었다. 이 부대는 부산시 거제동에 주둔해 남녀 인민군, 중공군 등 3만여명의 포로들을 수용, 경비하고 있었다.


어느날 포로 한 명을 인도하여 나오면서 인민군 군관(한국군의 장교격) 수용소를 지나던 찰나 꼭 12년만인 김해 사두심상소학교의 동기동창이었던 가네우미 겐쇼코군이 포로로 수용된 것을 발견했다. 인민군 군관이었던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가네우미군” 하고 소리지른 후 “야, 현식아. 네 부모를 만나게 해줄까” 하고 소리쳤으나 그는 12년만에 만나는 친구인 나에게 “야! 미 제국주의 앞잡이야, 8월 15일이 되면 남반부 끝인 부산이 점령되어 남반부 인민들이 해방될 것이고 너는 그 때 나의 손에 맞아 죽을 것이다”라고 등골이 오싹한 공갈 협박을 토하였다.

그 말에 정신이 혼비백산하고 전선에서 인민군 패잔병의 역습을 받은 것처럼 치가 떨리기 시작하였다.이어 그는 “네가 미 제국주의의 말을 타고 수용소 주위를 도는 것을 보고 마쯔모도라고 판단하였는데 바로 너로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와같이 천인공로할 악의와 살의에 찬 말투, 12
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들은 말이었다.

이러한 사상 논쟁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 “세계의 노동자여, 목에 걸린 쇠사슬을 풀기 위하여 모두 모여라”라고 외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부르짖음이 70년만에 무너진 것을 가네우미군은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지난번 용천 사고 때 이곳 미국 동포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고 있지 않았는가.

그후 휴전 직전인 53년 3월에 고 이승만 박사의 용단으로 전국에 깔려있는 3만여명의 포로를 새벽 1시에 동시 석방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으나 이 때는 순수한 빨갱이인 군관들은 모두 이북으로 넘어갔으므로 그 때가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 된 것이다.

‘가네우미군, 자네도 하루빨리 탈북하여 자유 대한의 품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길 바라네’이 세상살이엔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즉 쏘아버린 화살, 지나간 기회, 뱉어버린 말일진대 가네우미군은 이러한 상식을 알고나 있는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협박 공갈을 퍼붓지 않았다면 당시 상황으로 친구가 원하였다면 한명 정도는 탈출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아! 사상과 이념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소학교 6년 동안의 친구가 이렇게 등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가네우미군의 집은 제법 부농으로 방과후면 그의 집에서 함께 숙제도 하며 잠도 자고 했는데 그는 인민군 군관이고 나는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가 되어 흘러간 세월이 무심도 하기도 하다.

80길에 접어든 이 노병은 세계 제일의 나라 미국 워싱턴에 살면서 6.25를 맞아 다시 한번 그를 생각하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