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치일(國恥日)

2005-06-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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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국가적으로 치욕스러운 날을 국치일이라 한다. 한국의 경우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이 체결된 날이 그 첫째이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도배들의 남침이 그 둘째라 하겠다. 미국의 경우는 1939년 12월 8일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을 급습하여 세계 제 2차대전을 발발시킨 일이며, 그 다음은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서 뉴욕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펜타곤이 어이없게 공격당한 일이다. 이야말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스럽고 치욕적인 일이라 하겠다.

이조 오백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들을 잘 살게끔 보살펴야 할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는 부정하게 뇌물을 긁어모으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집단적으로는 자파의 정권 유지를 위해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어 왜구의 침략에 눈이 어두워져 국방을 게을리한 탓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치욕을 가만히 앉아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개중에는 한술 더 떠서 나라를 내어주는 댓가로 막대한 재물을 받아 챙기는 한편 높은 지위까지 얻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들먹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일신의 안일과 영화를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들로 하여금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하였으니 겉모양만 사람일 뿐 그 속은 야수와 같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정권을 맡긴 것은 맹수의 입에 고기를 맡긴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하와이 진주만이 졸지에 비행기 공격을 당한 때와 6.25사변이 발발하던 때는 다같이 일요일 새벽이었다. 주말이라 태평스럽게 군인들 대부분이 외출하고 병영이 텅 비어있는 때를 틈타서 맹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무지막지한 원수놈들이 불법으로 맹공을 퍼부어 엄청난 살상을 감행한 일을 새삼 재론할 여지도 없거니와 모든 일의 책임을 저들에게만 돌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법이긴 하지만 공격을 당한 쪽에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적군은 항시 호시탐탐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다가 기회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통수를 치는 법이니까 억울한 치명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 쪽에서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유비무환’이라고 개인이건 가정이건 국가이건 튼튼한 준비가 되어있으면 환란이 있을 수가 없다.어쨌거나 지나간 일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는 일이로되 쓰라리고 아팠던 과거지사가 양약이 되어 두번 다시 그같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매사에 여유있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의 공격을 받은 이후 미국에서는 “We will never forget 9-11-2001’라는 슬로건을 도처에 내어 걸고서 범국민적으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옛날 나치 히틀러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600만명의 유대인들의 원혼이 지금껏 살아서 유대민족으로
하여금 홀로코스트(Holocaust) 박물관을 도처에 건립하여 유대민족의 수난사를 전세계에 고발하며, 한편으로는 끔찍스런 유대인 학살을 영화화 하여 수시로 상영해 보여줌으로써 두번 다시 그같은 참상을 당하지 않도록 상기시켜 주고 있음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면서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아무리 세월이 약이라지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어찌 민족이 당한 그 치욕스러운 일들을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상기하자 6.25!”라는 말이 입으로만 뇌이는 구호에 그쳐서는 제 2, 제 3의 국치일을 또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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