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2005-06-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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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국(픽포스터)

매년 6월이 오면 끔찍하면서 몸서리쳐지는 6.25의 악몽을 생각하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1950년 6월 25일 대한민국의 새벽을 째지는 듯한 총성과 더불어 육중한 탱크의 굉음으로 국토가 초토화 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남한에 대해 북한은 수년간에 걸쳐 준비한 군대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하여 선전포고도 없이 무차별 남침을 감행하였던 뼈저린 민족의 가공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울분의 날이다.


해방 이후 수많은 애국자(?)들이 자신들을 내세우며 나 아니면 안된다는 망상에 잡혀 발목을 잡고 잡히는 어지러운 정치현실로 공전하고 있던 시점에서 준비된 막강한 화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저지한다는 것은 공기돌로 바위 치는 격이 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38선을 돌파한 북한의 야수들은 불과 3일만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발길 닿는대로 남한 전체를 유린하였다. 불과 2개월여에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저들의 손에 함락당하고 말았던 기억을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 아닐 수가 없다.

필자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으로 저들이 서울에 입성하던 당시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탱크와 마차부대를 앞세우고 보무당당(?)하게 종로 거리를 행진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선하다. 당시 야수들의 서울 침공의 이유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왜 같은 민족끼리 남북으로 갈려 싸우고 있는지 그 이유들을 필자도 분간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도망가고 김일성과 스탈린의 대형 초상화들이 길거리 곳곳에 붙여졌고 태극기 대신 인공기(당시는 몰랐음)가 요소 요소에 게양이 되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고 길고 살벌하였다. 우리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에 소집되어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그들의 도전적인 군가를 배워야 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아.. 그 이름도...김일성장군...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는 우리의 죽엄을 슬퍼 말아라...’ 무슨 뜻인지 내용도 잘 모르면서 목청을 돋우어 그 노래들을 배워야 했다. 그들이 서울을 점령한 후 그 길고 긴 여름동안 모든 국민들은 우선 굶주림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서울사람들은 집안의 쓸만한 물건이나 옷가지들을 챙겨 서울 근교 시골로 내려가 양식과 바꾸어 끼니를 이어갔다.

길거리에서는 지금의 고등학교 정도의 학생들과 사내들은 무조건 잡혀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인민군대에 편입되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들의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나가 죽어야 했다. 또한 부녀자와 50대 이상의 남자들은 부역이라는 명목으로 밤이면 나아가 강제노동으로 반죽엄들이 다 되어 돌아왔다.

당시 60이었던 필자의 부친도 이 강제노동에 동원되어 건강을 해치고 1.4후퇴시 망부가 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뜨거워지는 감정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한다.당시 천인공로할 인민재판이라는 명분의 재판은 즉석에서 사형 언도를 내려 죽창 등으로 마구 학살하는 끔찍한 살인들을 마구 자행하였다.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고 젊은이는 의용군으로 쓸만한 인재들은 북으로 끌고가는 납치 행각을 자행하면서 우리는 남조선을 해방시키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자신들이 해방군이라고 의기양양하였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6.25의 참상이나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지를 못하다. 남북통일을 운운하고 같은 민족의 단합을 내세우고 같은 민족의 어려움을 도와주자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6.25의 참상과 비참했던 민족의 비극을 만들었던 그 과거를 잊어서
도 안되며 용서해서도 아니된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는 적당히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그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얕잡아보고 핵을 내세워 위협을 일삼고 있다.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인지상정이다. 인간같은 사람이라야 상대를 하지 상종 못할 인간과는 상종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싶다. 그들은 이미 이단민족으로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간 민족의 배반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이고 진실로 참회하고 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하여 양심
적인 자세로 우리 앞에 설 때 그때는 우리도 돌아온 탕자를 위하여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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