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2005-06-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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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길(6.25참전 소년,학도지원병)

1950년 6월 25일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날이었다. 나는 그 때 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분명히 보았으며 경험하였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제 2의 6.25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10월 초순경의 서울은 방화와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9월 28일, 유엔군과 국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진격하여 들어왔으며 인민군은 후퇴하고 서울을 탈환하였다. 중앙청에는 인공기가 내려지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숨어있던 시민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치며 열렬히 군인들을 환영하였
다.피난 갔던 시민들은 돌아오기 시작하였고 거리에는 인파가 늘기 시작했으며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3개월간의 공산치하의 괴로움은 말끔히 잊은 듯 기쁜 마음으로 우리도 등교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때 학생들은 애국심을 발휘하여 너도 나도 학도병으로 지원하였다. 유엔군과 국군은 38선을 넘어 두만강과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중공군은 강이 얼기를 기다렸다가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인해전술로 개미떼와 같이 진격해 내려왔다.배재중학 3학년인 나는 학도병으로 지원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하는데 군의관이 나를 쳐다보고 웃으며 “가서 젖을 좀 더 먹고 오지” 하며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더니 지나가던 어느 장교가 내 사정을 듣더니 합격시켜 주었다. 간단한 기초훈련을 받고 포병에 배치되어 학생복 그대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씩씩하게 군가를 부르며 북으로 진격하여 들어갔다.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도 잊고 애띤 소년 학도병들은 불타는 애국심이 비록 단련된 체력은 아니지만 우리를 더욱 씩씩하고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게 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중공군의 남침으로 인해 우리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엔군과 국군은 피난민과 범벅이 되어 섭씨 영하 30도가 넘는 추운 겨울에 남으로 후퇴하여 38선을 넘어 서울을 거쳐 강원도 횡성에 이르러 부대를 재편성하고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해를 넘기고 2월 중순경의 어느 날, 강원도 횡성의 산간은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잠복하고 있던 중공군들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와’ 소리를 지르고 수류탄을 던지며 습격해 들어왔다. 부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우리는 포로가 되어 낮에는 계곡에서 쉬고 밤에만 행군하여 북으로 끌려가서 동해안 원산 근처인 신고산이라고 하는 계곡에 수용되었다. 막사를 짓고 낮에는 정치교육과 훈련을 시켰고 밤에는 도로보수공사며 식량이나 포탄을 운반하고 비행장을 보수하는 일도 시켰다.

밤 1시경 돌아와 나도 기도했다. 그리고 이후부터 언젠가는 꼭 돌아가리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초겨울인 듯한 어느 날 드디어 탈출할 때가 온듯 싶었다. 전투원이 너무 부족하여 우리들을 부대에 배치하고 구식 총과 수류탄을 주며 싸우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을 ‘해방전사’라고 부르며 서로 감시하고 있었다. 미군이 공격해 올라올 때, 나는 수류탄을 안전핀도 빼지 않고 그냥 굴려서 버렸다. 포공격, 전투기의 공격,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나는 이 때 탈출하기로 결심하였다. 전투가 끝나고 모든 군인들이 잠에 골아 떨어졌을 때 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흰 수건을 흔들며 ‘Help me, Help me’ 하고 외쳤다. 막사에 인도되었을 때 동쪽 하늘에 쟁반보다 더 크고 찬란한 태양이 눈부시게 불끈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때 한 병사가 얼굴을 비비며 끌어안고 좋아하며 사진을 찍느라 법석이었다.

“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리라” 그렇다. 인간은 가장 약했을 때 가장 강해질 수 있다.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에 모두 잠에 골아 떨어지고 보초병이 지나간 후 나는 산 꼭대기에 우뚝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남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뛰고 또 뛰었다. 이 때 보초병이 나를 발견하고 ‘도망병이다’ 하며 따발총을 갈기는데 머리 위로 옆으로 빗발치듯 날아오는 것이었다. 또 뛰었다. 너무 지쳐서 바위틈에 주저 앉았다. 이 때 ‘일어나라, 달려라’ 하는 소리가 마음 속에 들려왔다.

드디어 철조망이 나타나고 미군들이 아침을 준비하는 듯 하였다. 사람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데...평생을 교편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또 불행이 와도 뒤돌아 보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가르쳤다. 꿈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곳에 성공이 있다. 성공은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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