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 인권법과 한국정부의 무대책

2005-06-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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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끌어왔던 북한인권법이 미국 의회에서 드디어 통과되었고 부시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정식 법률로 발효되어 있다.
이 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망명 입국하는데는 걸림돌이 있었다. 우선 대한
민국의 헌법이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국토라고 규정하고 북한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상태이
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형식상 대한민국의 헌법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므로 미국이 이
망명 신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탈출해서 망명 신청을 해도 법 형식상
대한민국의 국민이 반란단체인 북한땅을 탈출한 것이지 북한이라는 국가의 국민이 북한으로부
터의 망명으로 해석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작년에 아직 이 법안이 미국 국회에 제안만 되어 있었지 아직 심의
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국 이민국은 탈북자들이 밀입국하다 잡혀도 다른 밀입국자들과는 다르게
취급해 주는 선처를 해왔다. 나는 국토안보부 이민세관국에 밀입국 한인이 체포되면 그 심문과
정에 통역을 맡는 일을 한다.
작년 여름 미국 독립기념일이 낀 연휴 주말을 이용해 미국 국경을 넘던 많은 밀입국자들이 체
포된 적이 있다. 이 때 멕시코 국경지대인 아리조나주의 어느 국경 마을에서 밀입국한 한인들
이 무더기로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을 출발한 동포들이었는데 그 중에는 북한에서 온
동포가 하나 끼어 있었다.
이민국은 유독 이 사람만 따로 추방을 위한 청문회 법정에 보내지 않고 이민관이 자발적으로
정치망명 신청을 권유해서 별도로 취급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기도 전이
었다.
이렇듯 미국 행정부에서는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법률인데도 곧 그런 특혜가 있으리라는 기대
를 가지고 이렇게 특별한 배려를 해오던 터였다. 북한 인권문제에 관해서 가장 큰 관심을 가져
야 마땅한 대한민국 정부는 오히려 부끄럽게도 북한 인권문제만 거론되면 입을 다물거나 숨어
지내왔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 보다 김정일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서 북한 인권에 관한 UN의
결의에는 기권을 하는가 하면 이번 미국의 인권법 제정 중에는 찬동하기는 고사하고 여당인 열
린우리당은 미국 국회에 이를 만류하는 편지를 보내 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비웃음을 산 일을
저질렀다.
한국정부와 여당, 그리고 소위 친북인사들이 북한 인민들을 형제애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떠들
어대면서 막상 그들의 가장 간절한 인권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북한 인민의 인권문제가
거론되면 당연히 김정일 정부의 탄압정치를 탓해야 할 터인즉 우리 정부는 김정일의 심기를 건
드릴세라 전전긍긍하고 있고 북한인민의 인권문제에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이번 북한인권법의 제정으로 탈북자들이 미국에 쉽게 망명신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니 한국정부는 의당 두 손 들고 환영해야 마땅하거니와 막상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중국땅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신청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제도적 장치를 찾아야
할 일이다.
한국정부가 이런 당연한 일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이런 역할은 소위 불법입국 알선 브로커들
의 전용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수만달러를 요구하는 브로커들의 알선비용을 탈북자들이 부
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이 법이 제정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 법에 따
라 탈북자들이 망명 혜택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다.
한국정부는 북한 인민의 인권을 생각, 탈북자들이 실제로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미국 및
중국과 적극적인 협상을 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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