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에 미칠 것인가

2005-06-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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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건축가)

지난 몇주 동안 황우석 교수가 일으킨 통쾌한 바람으로 하루 아침에 업그레이드 된 한국의 위
상이 자랑스럽다.
나는 그가 쓴 ‘나의 생명 이야기’를 읽으면서 미쳐야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는 일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그것이 자신을 위
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과 인류를 위한 ‘마침’일 때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는 것을
생각하다가 언젠가 한국 인터넷에 올랐던 색다른 ‘미침’의 감동적인 이야기 한 토막을 떠올
렸다.
<요즘 인터넷에서 만날 수 있는 며느리의 최고봉은 ‘미친 며느리’>란 제목으로 이름을 밝히
지 않은 채 소개된 ‘빨강머리 미용사’의 글이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소개하며 독자들과
생각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난번 이 지면에 실렸던 나의 졸문 ‘땅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웃기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러워진다.
지금 이 글의 경우는 황교수가 쓴 책과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이기에 이렇게 소개할 수 있지만
문제의 ‘추장의 편지’는 소개해 주신 분이 어느 목사님이었다는 기억만 흐릿하게 남은 채 -
‘추장이 미국정부에 쓴 편지 중에서-’라는 메모와 함께 그 편지 중 관심있는 부분만 추려 적
어놓은 것 뿐으로 그 출처를 찾을 길이 없었다. 신문이라는 좁은 지면관계도 있지만 출처에 관
해 언급치 못한 채 ‘그 편지를 떠올렸다...’로 시작해서 독자에게 소개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2일 느닷없이 그것도 목사님도 아닌 어느 여자분이 자기가 그 편지를 수년 전
에 이미 인용했던 사람이란 걸 밝히며 자기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그 편지의 많은 부분을 소개
한데 대한 불쾌감을 이 지면을 통해 토설하였다.
그 중에서 나는 그 인디언 추장의 편지는 ‘명문장이었다’고 소개했었다. 그 분이 그것을 자
기의 글이 마치 ‘세익스피어의 것처럼’ 명문장이었다는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았으리라 믿는
다. 섭섭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다같이 글 쓰는 사람으로 꼭 그런 방법과 표현을 썼어야
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그 분의 심기가 후련해 졌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미친 며느리>로 돌아가자. 자신을 미친 며느리로 소개하는 그녀에 의하면 자기는
‘꼬집기’와 ‘응석받이’인 시어머니께 반말을 하기에 그래서 마친 며느리라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실상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는데 미쳤고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미쳤던 것이었다.
25살의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녀는 겁없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돕
겠다며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3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시어머니를 돕기 위해 밖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한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에
30분마다 몸을 돌려주어야 한다. 말을 못하시기에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달라고 불평하고 운다.
시어머니의 정신연령은 4살 정도라고 한다. 하루 이틀이야 할 수 있겠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
신의 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로 그렇게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사랑에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고가 되려면 미쳐야 한다. 문제는 내 자신을 위해 미칠 것이냐, 남을 위해 미칠 것이냐를 선
택함일 것이다.
나도 남은 인생을 무엇에든 미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동안 살아가면서 서로 도움이 되
는 생각들을 독자들과 같이 나누고져 지난 4년여를 글 쓰는데 쏟았던 열정이 모두 부질없는 헛
것에 미쳐 있었던 것 뿐이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걸 깨우쳐주신 ‘추장의 편지’ 제공자, 그 분
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내가 너무 세상과 가까이 살아왔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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