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천박한 학력 타령

2005-06-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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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우스개 소리 한마디.
한국계 지상사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에 남기로 한 사람이 비즈니스를 찾고 있었다. 남보기에 그
럴 듯한 비즈니스를 찾던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세탁소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러다가 예전에 지상사에서 퇴직한 뒤 미국에서 자리잡은 선배들의 경우를 알아보고 풀이 죽
었다. 세탁소를 하는 선배 중 자기보다 낮은 직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에게는 이중적인 성향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
면서도, 가끔 자신이 한국에서 어떤 위치였는가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내 자식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심리학적으로 콤플렉스(complex)의 한 단면이다. 콤플렉스의 원뜻은 ‘넓은 의미의 사유작용에
서 의식적 통제로 다스려지지 않거나 연상을 방해하는 복합체’의 의미지만, 일상 언어 속에서
는 열등감을 대신한 말로 쓰이고 있다.
이같은 컴플렉스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고 오히려 훨씬 더 성공하는
케이스는 많다. 그러나 컴플렉스가 부정적인 면에서 심해지면 천박해진다.
얼마전 한국의 모 정치인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비난을
받고 있다. 자신을 ‘엘리트’라고 자칭한 그 정치인은 ‘국민의 60%가 대졸자이니 대통령도
대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끄러워지니까 “학력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차원에서 그랬다”고 말을 돌렸
다.
판사, 변호사를 했던 대통령이 대학 졸업장이 없다고 콤플렉스가 있다고 얘기한다면 누가 믿을
까. 또 한국인의 60%가 대졸자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근거일까. 자신은 왜 엘리트일까.
한 시사 평론가는 “정작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누군가 궁금하다”고 일갈했다.
천박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학력 논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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