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괜찮은 심술이라도

2005-06-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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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뉴욕에도 결혼식이 줄을 이었던 봄이 다 갔다. 지금쯤에는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손에서 서툴고 마음에서 생소한 살림살이를 신나게 시작했겠지. 예전과 달라서 지금은 결혼을 하자마자 거의가 다 독립된 생활을 한다. 시집살이고 뭐고 없다. 남녀의 구별이 없어진 탓이다.여자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만 하고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직업에 종사하고,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전문직에 종사하기 때문에 벌이에도 남자 못지 않다.

그들은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남녀의 구별 없이 일을 하고 그것이 요즘 시대에는 별반 흉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소위 옛날식의 딸의 어머니나 아들의 어머니다. 어쩌다가 딸 집에 방문한 딸의 어머니는 사위가 부엌에서 도마질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면 기분이 좋아지고, 반면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집에 왔다가 아들이 부엌에서 후라이팬이나 들먹거리며 음식을 하고 있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부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며느리를 앉혀놓고 큰소리를 치거나 잔소리를 했다가는 요절이 난다.


시부모가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수난의 시대다. 중국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한국여자는 남편으로부터 밥상을 대령받는 호강을 하고, 중국여자에게 장가를 가는 한국남자는 부엌일에서 손 떨 날이 없다고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중국인 규수를 며느리로 맞아 들여서인지 내 아들이 주로 부엌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마다 나는 본다.

나도 집에서 자주자주 음식도 하고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하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일 일은 없는데 나의 내자는 은근히 표정이 달라진다. 사위가 부엌에 있으면 기분이 좋고 아들이 부엌에 있으면 심술이 나는가 보다. 아들 가진 부모는 아들이 아내로부터 근사한 대접을 받기 원하고 딸 가진 부모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엌일까지 도맡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지. 웃고 돌아서야지 탓할 일은 아니지.

부부의 화음은 두 음의 화음이 아니라 단음의 화음이어야 한다. 두 인생이 하나로 겹쳐져서 내는 단음의 화음이어야 한다. 결혼한 두 사람이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타협으로서 관계를 지속해 간다면 그것은 결혼이 아니라 협정인 것이다.요즘 세상은 여자가 더 힘이 있고 여자가 더 무서운 세상이다. 여자들이 깨어나니 남자들은 약해지고 여자들은 강해진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의 관계에서 강약이 느껴진다면 그 두 사람은 이미 물 위의 기름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폭약을 들고있는 것이다.


한 가정을 품에 안고있는 아내가 지붕이라면 바람막이가 되는 담장은 남편이다. 담장은 낮은데 지붕만 높으면 무엇하며 지붕은 낮은데 담장만 높으면 무엇하랴!

집안에서는 따뜻하고 화사한 웃음을 마주보며 쏟아내면서 지붕과 담장의 키를 알맞게 조화를 시켜야 삶이 무엇인가를 부부된 남남이 하나가 되어 스스로 깨우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키를 맞추어 내는 단음의 화음,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사랑 위에 놓고 논리를 정의해
보지만 가정의 본체는 사랑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앞서야 한다. 평화는 불만을 참아내는 것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인내에서 비롯한다.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상대방의 말에도 “그래, 그래 맞아” 하는 말 이상의 좋은 인내는 없다.

가정을 이끄는 노동은 힘이 드나 그 가정이 꽃이라 여긴다면 그 꽃밭을 가꾸는 노동은 힘이 들지 않는다. 남자가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든 여자가 잔디를 깍든 그들이 꽃밭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가정에 괜찮은 심술이라도 주머니에 꼬기꼬기 접어넣을 줄 알아야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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